『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편에는 굽고 울퉁불퉁해서 쓸모가 없는 나무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가 나온다. 장자는 그 나무가 사람들이 말하는 '쓸모'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도끼질을 당하지 않고, 근심 걱정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인간세'(人間世) 편에서는 '지리소'(支離疏)라는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지리소는 턱이 배꼽에 가고, 어깨가 머리 위로 가 있었기 때문에 손발이 보통 사람들처럼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지체장애 때문에 군대나 부역과 같은 나라의 일에서 면제가 되고, 자급자족하면서 편안하게 천수를 누리게 된다.(이름을 그냥 '疏'라고도 부르는 것을 보아서는 '지리'(支離)는 지체장애인을 이르는 말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여기에서 '지리'가 유래했기 때문에 옛 문헌들에서 '지리'는 자신의 상황을 낮추어서 이야기를 하거나 의견이 온전하지 못한 경우에 많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그의 의견은 지리하다'라고 한다면 의견이 온전하지 못하고 결함이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손발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상황, 즉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에도 '지리하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하루도 열두 김도 길샤 셜흔 날 지리(支離)ᄒᆞ다.'(허난설헌, '규원가' 중에서), '올해는 지리하게도 무더위가 오래갔는데 今歲支離溽暑長 / 달밤에 서쪽 문으로 서늘함을 처음 맞나니 西門月夕始迎涼'(정약용, '밤이 서늘하다[夜涼]' 중에서)와 같은 표현들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루하다'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전을 보면 '지리하다'는 '지루하다'를 잘못 쓴 것이라고 되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리하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발음이 조금씩 변하여 현재의 '지루하다'가 된 것이므로, '지루하다'의 잘못이 아니라 '지루하다'의 옛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지루하게 이어진다는 의미의 '지리'라는 말은 후세에 '멸렬'(滅裂)이라는 말과 합쳐져 '지리멸렬'(支離滅裂)로 많이 쓰이게 된다. '멸렬'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문헌에서 '경박함'을 의미한다고 주석을 달고 있다. 결국 '지리멸렬'은 지리하면서도 멸렬한 상황, 즉 일이 뜻대로 안 되어 갈피를 못 잡는데다 경박하게 움직여 일이 더 꼬이는 상황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올해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시원하게 풀어간 일은 없었다. 이럴 때 돌파구 역할을 했던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더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지리멸렬'이야말로 올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자성어라고 할 수 있다. 제발 내년에는 올해가 남긴 문제들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쾌도난마'(快刀亂麻)로 처리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민송기(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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