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동네조폭' 척결

경찰청이 얼마 전 '동네조폭' 특별단속 결과를 내놨다. 경찰은 사전에도 없는 '동네조폭'을 기존 조직폭력배와 달리 특정 조직에 소속돼 있지 않지만 일정 지역에서 음식점, 노래방 등 소규모 업소만 골라 영업을 방해하고 돈을 뜯고 무전취식 하는 사람 또는 무리로 정의했다. 9월 초부터 이달 중순까지 100일간 전국적으로 특별단속을 벌여 3천136명을 붙잡아 이 중 960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273명 검거에 45명 구속이라는 대구의 실적도 포함됐다.

경찰이 잡아들인 이들의 행태를 보니 가관이었다. 여성 혼자 운영하는 식당에 들어가 상습적으로 술값을 떼먹고 문신을 보여주며 업주를 위협해 돈을 뜯고 노래방의 불법 사실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받아챙긴 사례도 있었다. 동대구역 일대에서 동료 노숙인과 상인을 상대로 폭행과 갈취를 한 노숙인 일당도, 또 온갖 악담을 늘어놔 영업을 방해한 70대 할머니도 있었다.

'00동 왕' '욕쟁이 할머니' '술거지' 등으로 불린 이들이 나타나면 상인들은 두려움에 떨며 '벙어리 냉가슴'만 앓아야 했다. 이들의 패악질에 정신적 피해는 물론 생업까지 위협받고 더러는 참지 못해 문을 닫기까지 했다.

흡사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큰 덩치, 깍두기 머리, 검은 양복, 각목과 흉기를 지닌 채 패싸움을 벌이는 '조폭'은 아니었지만 영세상인들에겐 이들보다 더 무섭기만 한 '조폭'이었다.

문뜩 기자 초년병 시절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홀로 국밥집을 운영하던 한 아주머니 역시 이런 동네조폭에 시달림을 당하다 더는 참기 힘들어 기자에게 SOS를 요청했다. 해가 질 때면 가게에 찾아와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을 시키고서 늦게까지 가게 한쪽에 앉아 각종 트집을 잡고, 때로는 다른 손님에게 시비를 걸어 단골손님의 발길까지 끊게 하는 한 아저씨를 어떻게 든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사연이 딱해 기사를 쓰고 경찰에 방법을 구했으나 사안이 가벼워 구속 등의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대답만 들었다.

10여 년 전 그저 동네 '말썽꾸러기' 정도로 여기며 공권력마저 손을 놓았던 이들에 대해 이제는 경찰이 '조폭'이란 이름까지 붙여 잡아들이는 것을 보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한편으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영세 상인들이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을까. 기자로서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보듬지 못한 데 대한 반성도 하게 된다.

경찰은 이번 동네조폭 특별단속을 하면서 소액의 돈을 뜯어가는 사건이라도 여러 번 반복됐을 땐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겠다는 전에 없던 강경의지를 내보였다. 피해자들에게는 가벼운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분을 하지 않겠다며 다가갔다. 여기에는 강신명 경찰청장이 취임 일성으로 "기초 치안을 위해 동네조폭 척결에 나서겠다"고 밝힌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수장의 의지를 확인한 경찰로서는 동네 작은 가게까지 살피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늦었지만 이제라도 앓던 이를 뺀 것처럼 속이 시원하다"며 영세 상인들은 손뼉을 치고 있다. 그러나 그 마음 한편엔 '특별단속 기간이 끝나 가벼운 처벌이 대부분이었던 동네조폭이 찾아와 보복을 하지 않을까, 그동안 친숙하게 다가왔던 경찰이 '할 것 다했다'는 식으로 관심을 거두지는 않을까, 잠시나마 맞은 이 평화가 사라지지 않을까' 등 다시 불안감이 싹트고 있다.

민생치안은 이를 덜어내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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