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갑오년이 저물고 있다. 새로운 희망을 다짐해야 할 때이다. 그러나 최근 정윤회 파동, 조현아 사태, 신은미 사건, 통진당 판결 등에서 드러난 국론분열을 볼 때, 미래가 낙관적이지 않다. 작금의 사정은 갑오농민운동이 일어난 120년 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렵고 혼란스럽고 불안정하며 무기력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김영란법은 당초 원안에서 한참 후퇴했고, 언제 통과될지 알 수 없다.
1894년 동학농민들은 국가혁신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기울어가던 조선을 구원하고자 부정부패 척결, 신분차별 철폐 등 봉건제적 적폐의 척결을 주장하면서 일어섰다. 하지만, 조선 군주는 동학농민의 요구를 수용하는 '혁신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군주는 민중의 참여를 활용하여 성리학에 기반을 둔 양반 관료체제, 즉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사회를 근대적인 정교분리의 사회로 바꿔내는 기회로 사용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군주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학농민을 진압함으로써 자신의 지위와 나라를 모두 잃는 망국의 길을 걸어갔다. 만약 군주에게 민중의 참여를 정치혁신과 국정안정 및 국가발전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는 혁신적 리더십이 있었더라면, 조선은 일찍 미국과 같은 민주공화국이 되었을 수도 있다.
군주의 혁신적 리더십은 국가의 흥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군주의 혁신적 리더십을 강조한 대표적인 정치가는 르네상스 말기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이다. 그는 '군주론' '로마사 논고' '피렌체사' 등을 통해 로마 공화정이 어떻게 훌륭한 제국으로 발전했는지 반대로 자신이 살고 있는 피렌체가 왜 망국의 길을 갔는지를 비교분석하여 역사와 정치의 교훈으로 삼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 의하면, 국가의 흥망이 갈리는 지점은 '계급의 대립'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계급의 대립을 '파당적인 정쟁'으로 몰고 갈 것인가 아니면 '비파당적인 갈등'으로 승화시킬 것인지의 차이였다. 후자로 가기 위해서, 즉 국가에 유익한 계급대립이 만들어지려면 파당이나 도당이 수반되지 않도록 '숙의의 제도화'와 '국민통합적인 법률조치'가 동반돼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어느 사회이든, 어느 정치 세계이든 귀족(부자)과 평민(빈자)이라는 두 계급은 사라지지 않고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더 많은 부와 욕망을 획득하려고 지배하고자 하는 귀족과 더는 지배받기를 싫어하면서 자유를 추구하는 평민 간의 계급투쟁은 피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계급투쟁을 종식할 수 없기에, 군주와 정치가가 계급 간의 대립과 갈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정치와 국가통치의 중요한 문제라고 보았다.
군주(통령)와 귀족(원로원)들이 평민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공식적인 숙의기구인 민회와 호민관제도로 발전한 로마 공화정은 계급대립을 '비파당적인 제도화'로 바꿔 정치혁신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다. 로마 공화정과 피렌체가 공공에 대한 미덕과 공식적인 제도의 힘에서 벗어나 견제와 균형이 아닌 특정 세력의 독주와 함께 사적인 파벌의 힘이 작동되어 파당적인 대립으로 갔을 때, 국가는 붕괴하였다. 마키아벨리는 "로마공화국은 평민과 원로원의 대립에 의해 자유롭고 강대하게 되었다"고 강조하면서, 군주는 귀족보다 민중의 지지를 얻을 때 보다 안전하게 통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계급대립으로 국가가 망할 것인가 아니면 흥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군주와 정치가의 몫이다.
21세기 '신군주'인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드러난 파당적인 대립을 비파당적인 것으로 바꿔 청와대 개혁, 국정쇄신, 국가혁신의 기회로 삼는 혁신적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영국의 '제3섹터부'(시민사회부)와 같은 부처를 신설하여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대주주가 주주 공동의 재산인 주식회사를 사유화하지 않고, 종업원을 노예처럼 부리지 않도록, 견제하고 균형을 잡는 '종업원경영참가법'을 제도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한 파당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과 국가의 대표라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채진원/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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