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 갑오년 주역인 전봉준과 손화중은 체포되어, 이듬해 서울의 감옥에서 처형되었다. 김개남 장군도 체포된 즉시 전주에서 처형되어 서울 서소문 감옥에 효시되었다. 1898년 5월에는 동학의 제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마저 서울 단성사 인근에서 교수형당했다. 하지만 살아남아 동학혁명의 불씨를 살린 지도자가 있었으니 그가 손병희였다.
1894년 오늘 손병희는 최시형의 뒤를 이어 동학의 제3대 교주에 취임했다. 2대 교주 최시형 밑에서 종교적 수양을 하며 동학을 이끌어갈 역량을 길러갔다. 입교 10년 만에 호서지방을 중심으로 한 북접의 통령에 임명된 그는 전봉준과 함께 실질적인 동학혁명을 주도한 최고 지도자였다.
그는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교주 자리를 박인호에게 인계한 뒤 은거했다. 1919년 3'1운동을 앞두고 천도교 간부들에게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라고 다짐하면서 3'1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현장에서 바로 체포된 그는 1920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1922년 62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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