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해의 窓] 2014년을 보내며

올해 포항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무엇이었을까? 포항운하 개통, 불꽃축제, 이강덕 시장 취임, 박근혜 대통령 방문 등등 이런저런 일이 일어났고 뭇사람의 관심을 끄는 크고 작은 사건도 있었다. 그렇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가장 즐거운 화제의 주인공은 '폭탄주 아줌마'가 아닐까 한다. 우연히 찍힌 동영상이 선풍적인 화제를 모으기 시작해 포항을 찾은 술꾼이라면 아줌마의 변화무쌍한 폭탄주 묘기를 구경하고 싶어 하는 정도가 됐다. 그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룬 것을 빗대 혹자는 '포항관광의 일등공신'이니 포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필자가 굳이 '폭탄주 아주머니'를 들먹이는 것은 그만큼 올 한 해 포항에서 재미있고 인상적인 화젯거리가 없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솔직히 길고 힘든 한 해였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포항지역 경기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틀린 말이 아니다. 포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포스코와 계열사들의 영업수지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고 내년에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다간 영국의 셰필드나 미국의 피츠버그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극단적인 예상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경제주체들의 대응력과 고민의 정도는 미비하기 짝이 없다. 가장 앞장서야 할 포항시는 새 시장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으나 제대로 된 좌표 설정을 못 하고 있다. 포항시청 앞에 크게 걸려 있는 '창조도시 포항'이라는 구호가 그 방증이 아닐까. 현 정부의 슬로건을 그대로 베껴와 마치 청와대의 시혜만 바라고 있는 듯해 씁쓸한 느낌마저 든다.

포항상의를 비롯한 경제계는 선진지 견학을 다녀오고 이런저런 포럼을 열고 있지만, 구체적인 행동과는 거리가 있는 전시성 내지 업적 과시용 이벤트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포스텍, 한동대를 비롯한 포항지역 대학들의 역할도 유명무실하다. 미국, 영국, 독일의 대학들이 망해가는 도시를 살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과는 달리, 포항지역 대학들은 이런 역할을 맡을 준비도, 마인드도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외부로 통하는 문을 꼭꼭 닫아 걸고 '자기네만의 삶'에 안주하고 있지만, '대학은 도시와 흥망성쇠를 같이한다'는 사실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올해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괜찮을 수 있다. 우울하고 칙칙한 마음과 분위기는 형산강에 훨훨 띄워 보내고 내년에 새로 시작해도 늦은 것이 아니다. 새해에는 모든 경제주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모두가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이 우리 앞에 있지 않은가.

박병선 동부지역본부장 lala@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