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했다는 판정을 받으니 눈앞이 깜깜해지더군요.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급성림프성백혈병을 앓고 있는 류호은(42) 씨. 2010년 처음 판정을 받고서 병 앞에서도 그는 의연했다. 30대 후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누구보다 그를 믿고 따르는 아내와 세 아들이 있었고, 건강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치의 희망을 맛본 후 다시 병이 재발하면서 그의 자신감도 꺾여가고 있다. 무엇보다 커가는 아이들과 자신을 돌보는데 온 힘을 쏟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져간다.
◆여섯 식구의 행복했던 한때
아내와 세 아들, 어머니까지 여섯 식구가 한 지붕 아래 사는 호은 씨 가족은 2010년 전까지만 해도 웃음이 넘쳤다. 시골집이기는 하지만 가족들이 비를 피할 곳이 있었고, 빠듯하기는 했지만 가장이 건설현장에서 땀 흘려 번 돈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고, 가족 모두가 건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 4월 가족의 웃음은 희미해져 갔다. 치과에서 치아 치료를 한 호은 씨는 3주 동안이나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백혈병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병인 줄 알았죠. 시골에 살고 있어 주변에 그런 병 걸린 사람은 보지도 못했거든요."
혈액검사를 받고 급성림프성백혈병 진단이 나오고 난 뒤에도 호은 씨는 자신의 병을 믿기 어려웠다. 워낙 큰 병인데다 보험을 들어둔 것도 없었고 모아둔 재산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9살, 7살, 6살이던 세 아들을 생각하면 백혈병을 받아들이긴 더 힘들었다.
"급성림프성백혈병의 생존율이 50%고 병에 걸린 환자 중 절반이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크게 마음쓰지 않았어요. 아내가 너무 긍정적이라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가족들 때문에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생겨난 희망
항암치료가 시작됐고 호은 씨는 각종 부작용에 시달렸다. 구토, 출혈과 함께 숱이 많던 머리도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했다. 독한 항암제를 복용하면서도 그는 희망을 얘기했다. '앞으로 나으면 무엇을 하겠다'는 말을 자주 하고 세 아들을 잘 키우겠다는 욕심도 있었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던 것도 그가 희망을 볼 수 있는 이유였다. 호은 씨의 투병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한푼 두푼을 건네고 갔다. 2차 항암치료까지 1천만원이 넘는 치료비는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이 모아준 성금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도 모아둔 돈도, 보험도 없었던 호은 씨에게 치료비는 계속해서 쌓였다. 지난 2010년 9월 본지 이웃사랑 코너에 그의 사연이 소개됐고, 독자들이 모은 성금이 전달됐다.
"너무도 감사하게 기회가 닿아 매일신문 독자분들에게 도움을 받았죠. 처음엔 도움의 손길이 오히려 죄송스러웠는데 저와 제 아이들이 모두 갚겠다는 생각으로 감사히 받았습니다."
이웃사랑에 소개된 이후 호은 씨의 상태는 점점 좋아졌다. 병원에서 항암제가 그의 병에 잘 듣는 것 같다는 소견을 내놨다. 3년 가까이 백혈병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고 완치의 희망도 생겼다.
◆재발과 함께 찾아온 치료비 부담
하지만 올해 8월 호은 씨는 갑작스럽게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검사 결과 백혈병이 재발한 것이었다. 게다가 상태는 이전 발병 때보다 훨씬 나빴다.
"온 뼈마디가 아파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죠. 병원에 갔더니 돌연변이가 생겨서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더군요. 끝나간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몸에 잘 맞았던 항암제도 내성이 생겨버려 더 이상 듣지 않았다. 새로운 약으로 시작한 항암치료는 또 한 번 각종 부작용을 불러오면서 호은 씨를 괴롭혔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완치를 위해서는 골수이식 외에는 답이 없다는 의견을 전했다.
"골수이식을 해도 나을 확률은 반반이라고 하더군요. 거기다 이전에 골수이식을 위해 공여자를 찾았다가 그분이 중간에 이식을 포기하는 바람에 좌절했던 경험이 있어 두렵기도 했습니다."
다시 기나긴 항암치료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는 사실도 끔찍하지만 호은 씨에게는 치료비 부담이 더 크다. 그동안 병으로 인해 일을 거의 하지 못한데다 아내도 그를 간호하느라 파트타임 직장밖엔 다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이 된 큰아들을 영어 학원에 보내고 싶지만 그동안 부족한 치료비와 생활비로 인한 채무 때문에 그 돈조차 마음껏 쓸 수 없는 사실에 가장은 고개를 숙인다.
"세 아들 모두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데 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요. 특히 큰 아이는 성적이 상당히 좋아서 부모로서 지원해주고 싶지만 아픈 아버지 때문에 그럴 수 없어 미안한 마음뿐이죠. 다시 건강해져서 아이들에게 든든한 아버지가 되고 싶은데…."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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