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대구 명덕초등학교 4학년 이윤복 학생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일기가 매일신문에 났다. 시골에서 매일신문사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됐다. 일기는 그 뒤 신상옥 감독이 영화로 제작해 국민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나도 참 감동적으로 읽었던 기억이다. 대구에 전학 와 제일 먼저 찾아가 본 곳이 매일신문이다. 중앙로에 있는 흰 타일 건물이었고, 위엄이 있었다. 대학 합격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준 곳도 매일신문이었다.
매일신문은 대구경북의 근현대사와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2'28 대구 학생의거 당시 여론을 선도했다. 한국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특히 매일신문은 자유당 시절(1955년) 최석채 주필이 구속되고, 자유당 간부와 깡패 등 40여 명이 신문사에 난입하는 테러를 당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무죄확정 판결을 받아내어 한국 언론자유를 쟁취하는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 70년대 이후에는 경제 건설과 산업화 성공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충실했다.
지역 언론은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과 지방(대구경북) 상생'발전의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중앙 정부의 수도권 집중'일극화 정책을 지방자치분권 체계와 지방 다극화 정책으로 전면 전환하도록 매일신문이 더 날카로운 시각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중앙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조간 전환은 큰 결단이다.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맞춰 독자 중심으로 사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매일신문의 새로운 도전, 혁신의 노력이 대구경북의 발전 노력과 맞물려 시너지효과를 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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