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눌 때 터 커지는 게 행복이죠."
흥청망청 놀고 즐기는 크리스마스는 가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신 가정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산타가 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작은 마음이 모여 밝힌 사랑의 불빛은 예수 탄생의 의미를 더해 사회 곳곳으로 퍼지면서 훈훈한 온기를 전하고 있다.
◆음악 재능기부
21일 오후 2시 대구백화점 앞 동성로 야외무대에서는 27명이 함께 부르는 캐럴 공연이 펼쳐졌다. 노래를 부르는 입에서 김이 나오는 추운 날씨에도 4시간의 공연을 펼친 이들은 '사랑의 노래 봉사단'(사노봉) 단원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사노봉은 2008년부터 병원이나 복지시설에서 자선음악회와 이웃돕기 성금 모금을 위한 거리음악회 등으로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50명의 단원 대부분이 직장인이나 자영업자이지만 공연이라면 주말'공휴일 등 쉬는 날도 기꺼이 반납할 정도로 봉사에 열정적이다.
'김쌤'으로 알려진 방송인 김홍식 씨도 초창기부터 단원으로 가입해 공연 사회자로 봉사하고 있다. 노래에 자신이 없는 봉사자들은 김 씨처럼 진행이나 장비팀 등으로 활동한다.
정태규 사노봉 단장은 "크리스마스 공연은 특별히 캐럴을 위주로 공연을 기획하고, 빨간 모자를 쓰는 등 신경을 썼다. 이날 모인 성금 80만원은 사노봉이 정기후원하고 있는 조손가정 다섯 곳에 전달된다"고 했다.
악기전공자들은 크리스마스에도 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환자들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23일 대구가톨릭대학병원에서는 병원 가득 현악 4중주가 연주하는 캐럴이 퍼졌다. 대구가톨릭대 음악대학 학생 8명이 성탄절을 앞두고 환자들을 위한 작은 공연을 마련한 것.
병실까지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환자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신나는 캐럴에 맞춰 손뼉까지 치며 공연을 즐겼다. 정형외과 병동에 입원 중인 김수정(24) 씨는 "처음엔 CD를 틀었나 했는데 박수소리가 들려 휠체어를 끌고 나왔다. 클래식 공연은 접한 적이 없는데 병원에서 처음 보니 색다르다"고 말했다.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있는 김은지(24) 씨는 "평소 재능기부에 관심이 많아 종종 자선공연에 참가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봉사자를 모집하는 걸 보고 얼른 자원했다. 성탄절을 앞둔데다 병원에서 연주하는 것이라 더 뜻깊다"고 했다.
◆대학생 산타
대학생들도 뜻깊은 크리스마스를 보내고자 나눔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영어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정된 '계명대 인터내셔널라운지'. 이곳에 근무하는 교직원과 자원봉사 학생 5명은 산타 복장과 분장을 하고는 24일 계명대 동산병원 소아병동 아이들에게 캐릭터 장난감을 전달할 계획이다.
60여 명의 아이에게 전달할 선물은 이달 3, 4일 인터내셔널라운지에서 커피, 과자 등을 판매해 모은 수익금 120만원으로 마련했다. 자원봉사 대학생인 추성원(24) 씨는 "성탄절 봉사활동을 생각하면서 교직원들이 외국학생은 물론 영어공부를 하려는 한국학생들로 북적이는 라운지에서 모금활동을 펴자고 제안했다. 요즘 인기가 많다는 엘사, 또봇 인형 등을 받으면 좋아할 아이들 생각에 벌써 흐뭇하다"고 했다.
대구 달서구 효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도 모금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함을 나누고 있다.
이 학교 1, 2학년 전체 20학급은 각각 지역 양로원, 장애인재활복지시설 등과 1대1로 결연하고 지난 4월부터 이달까지 매월 후원금을 모아왔다. 이렇게 모인 후원금이 600만원에 이른다.
효성여고의 모금활동은 2010년부터 교내 봉사 동아리 학생 30여 명이 매월 복지기관에 성금을 보내던 것이 1, 2학년 전체로 확대된 것.
처음에는 '왜 모두 참여해야 하느냐' '매월 후원금을 내기 번거롭다'는 학생들의 불만도 있었지만 봉사를 하고 나서 얻는 보람이 커 이제는 오히려 이날을 기다린다. 아이들의 감사 편지에 학생들은 후원금과 생필품 기부를 점차 늘려가고 있다.
24일에는 학생들과 복지기관 관계자들이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미사를 함께하며 그동안 모은 후원금과 학용품, 생필품 등을 전달한다.
정용교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터넷과 SNS 등이 발달하면서 나눔문화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그저 먹고 즐기는 성탄절이 아닌 합리적이면서 나누는 성탄절 문화도 젊은이들 사이에 점차 퍼지는 분위기"라고 했다.
◆사랑의 열매 트리
A(11) 군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때,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축구화를 선물 받았다. 갖고 싶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님께 사달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축구화였다.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축구화를 받아든 A군은 반드시 훌륭한 축구선수가 돼 자신도 나중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많은 선물을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A군의 소원은 대구 중구 제일교회 '사랑의 열매 트리'가 이뤄줬다. 이 교회 앞에는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면 로비에 대형 트리가 놓이는데, 여기에 주렁주렁 소원 쪽지가 빼곡하게 채워진다. 이는 교회가 중구 7개 아동센터와 연계해 초'중'고 170여 명의 학생에게 크리스마스 이브 때 갖고 싶은 선물을 적도록 해 트리에 매달아 놓은 것.
그러면 함께 뜻을 나누는 사람들이 이 열매를 따 그곳에 적힌 선물을 교회에 전하고, 교회는 이를 다시 아동센터에 보내 소원 쪽지를 쓴 학생들 손에 쥐여 준다.
제일교회는 4년째 이 행사를 마련하고 있는데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생색을 내거나 부담을 갖지 않아 호응이 좋다. 미처 소원 열매를 따지 못한 사람들은 과자, 학용품 등을 교회 전하기도 하고 익명으로 수십만원을 기부하기도 한다.
올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는 한 기부자는 "직접 아이들 손에 전해주지는 못하지만 마치 산타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신이 난다"며 "작은 것이지만 이웃과 나누려는 마음이 커진다면 지금보다 더 따뜻한 세상이 될 것이다"고 했다.
올해도 7일부터 사랑의 열매 트리가 설치됐는데 많은 선물이 교회에 쌓이고 있다. 교회는 이를 23일 아동센터로 보내,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아이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박창운 대구제일교회 담임목사는 "선물을 받고 기뻐할 아이들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며 "조용하게 교회로 선물을 들고 오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진짜 산타의 모습을 보게 된다"고 했다.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허현정 기자 hhj224@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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