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극장가에 사랑이 흘러넘치고 있다. 70여 년을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구순 노부부의 사랑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화제를 일으키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가 하면, 현대사의 격동기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온 한 가장의 곡절 많은 삶을 다룬 '국제시장'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들 두 작품을 보러 가려면 미리 손수건을 챙겨야 한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세모를 더욱 훈훈하게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연말연시가 되면 가족의 사랑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들이 더 눈에 띄는 것 같다.
대중문화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심적 갈증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올 연말 극장가를 달구는 가족영화들의 강세가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박함과 몰인정, 차가움을 웅변하는 게 아닌가 싶어 약간은 씁쓸하기도 하다. 영화로나마 대리만족을, 안식을 얻으려는 안타까움을 보는 것 같아서이다. 이 시대 우리가 느끼는 갈증은 사랑과 이해, 용서 같은 정서가 아닐까.
주위를 한 번 둘러보자. 오늘날 우리 사회 어디에 사랑, 이해. 소통, 화합, 융화, 관용 같은 단어들이 설 자리가 있는지. 정치인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기주장만을 되풀이하며 싸움을 걸려고만 할 뿐이다. 그들의 정쟁 속에서 한 번이라도 양보하고 타협하고 협동하려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민생은 점점 힘들어져 국민들은 지친 삶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데도 오불관언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아예 중요하지가 않다. 그저 내 편이 아니고 상대편이기 때문에 흠집을 내고 반대를 한다.
상대편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짓밟으려 하는 모습이 위정자들뿐만이 아닌 일반 국민에게서도 나타나는 것 같아 더 안타깝다. 며칠 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체 결정이 있었다. TV를 통해 방송을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 착잡함을 지울 수 없었다.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연못 전체를 메워버려야 한다는 논리도 이상했지만,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헌법재판소 앞에 두 편으로 갈린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한쪽에선 서로 부둥켜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분노의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무엇이 우리 국민들을 이 같은 양 극단으로 갈라서게 한 것일까. 여기엔 분노 갈등 반목 분열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나 아니면 너, 내 편 아니면 적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 크지도 않은 나라에서 함께 부둥켜안고 가도 시원치 않을 국민들이 왜 이렇게 대립과 분열로 서로 헐뜯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왜 서로 포용하지 못하는지, 왜 서로 깔아뭉개고 짓밟으려고만 하는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 우스운 일이 아닌가. 이 세상은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며 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서로 생각은 다르지만 이해하고 타협해가며 보다 큰 이상과 목표를 향해 힘을 합쳐 살아가는 게 아닌가. 모두가 생각이 같아야 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라면, 한때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전체주의의 이념과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2014년을 시작하며 교수신문이 선정한 희망의 사자성어는 전미개오(轉迷開悟)였다. 거짓과 속임수 등 온갖 미혹함을 떨쳐버리자는 소망을 담은 말이었다. 그런데 똑같은 신문이 올 한 해를 결산하는 사자성어로 뽑은 것은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되고 말았다.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한다는 뜻이다. 본질을 호도하는 속임수가 판친 한 해였다는 것이다. 늘 그런 식이다. 희망으로 시작해 절망으로 마무리되어버리는 한 해 한 해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또 한 번의 희망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희망마저 포기해서는 살아내는 일 자체가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2015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새로운 희망의 사자성어를 한번 골라보자. 새해엔 우리가 한 나라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국민으로서, 한 공동 운명체의 일원으로서 서로 뜻이 다르더라도 서로 포용하고 이해하며, 손을 잡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동주공제'(同舟共濟)를 골라보았다. 한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너는 우리 국민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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