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 속에서-중국 동포 한국 생활기] 버리면 후련한 것을

하늘의 별 따기처럼 쉽게 배당되지 않는 도박게임에 인생 전부를 바쳐서 한 밑천 잡으려는 사람은 또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가. 인생 자체가 도박이고 한 방이면 게임은 끝난다는 엽기적인 도박 망상증은 꼭 한 사람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중국에서의 도박병을 떼려고 한국 근로자 생활을 시작하던 내게 이변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은 2년 전 초봄이었다. 새로 직장을 구해서 우리 공장에 찾아온 A아저씨가 나와 한방에 배치되어 왔는데 공교롭게도 그 또한 노름꾼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다가 도박 이야기를 나누는 데까지 갔다. 그때 나는 한국에 큰 카지노가 있는 줄 알게 되었고 그가 다닌 지도 근 10년째에 달한다는 것도 듣게 되었다.

나는 한국 카지노가 궁금했고 언제 갈 때 같이 탑승시켜 달라고 졸랐다. 그는 혼자 가는 것이 외롭던 차라 동승을 환영했다. 차에서도 우리는 계속 도박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는 한 달에 일주일은 카지노에 매달려 살 정도였고, 몇 시간씩 자가용을 운전하고 달려가서 한판 붙어야 직성이 풀리곤 하는 게임광이 되었다고 했다. 놀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이 빨려들었으며 쉽게 끊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파친코, 포커, 블랙잭, 바카라 등 안 해 본 놀음이 없다고 했으며 불과 몇 년 전에는 10일 동안 파친코에서 2천만원의 돈도 날렸다고 한다. 결국 게임은 오래 놀면 승자가 없다면서 지금은 나와 함께 다니는 이 직장을 찾았고 도박장 출입도 자제하고 도박자금도 충당한다는 것이었다.

카지노는 우리 재외동포에게는 입장권도 무료였다. 영화에서만 보던 국제도박장이 따로 없었다. 젊고 발랄한 딜러들이 칩을 뿌려대고 한편에서는 게임기를 두드려대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는데 나는 새로운 세상에 온 듯 놀라고 말았다.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다니면서 어떻게 게임을 하는가 하고 한참 보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다 도박 중독이 온 것이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기 전까지 놀지 않겠다고 작심했지만 나도 몰래 마음이 달뜨기 시작했다. 나는 한화 5만원으로 칩을 10개 바꾸었다. A아저씨를 따라 바카라에서 호기심과 재미삼아 한번 해봤다. 플레이 아니면 뱅크, 타이 3가지 컬러에 대면되는 간단한 놀음이지만 흥미를 유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타이에 칩 하나 댔다가 8배의 수확이 돌아오면서 빙고가 저절로 입속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금방 다른 사람들처럼 게임에 몰입했고 중국에서의 과거 마음으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이기고 지고 하다가 결국 7만원을 따게 되었다. 처음으로 한판 놀음에 7만원을 따게 되자 나는 흥분이 극도에 달하고 말았다. 일로 치면 하루 일당 값이었다. 그날 새벽으로 돌아온 나는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도박에 천부가 있는 것 같이 생각되고 다시 도박을 하고 싶은 생각이 활활 타오르듯 했다. 힘들게 돈 벌지 말고 손쉽게 돈 벌어야 하겠다는 아둔한 생각으로 날을 밝힌 것이다.

그 후 나는 그 아저씨를 격주에 한 번꼴로 따라나섰다. 그런데 두 번째부터는 돈이 쉽게 따지지 않았다. 자꾸 지기만 하고 역시 도박은 이길 사람이 없다는 자탄을 깨달았다. 그때야 나는 왜 여기 한국에 나와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부끄러웠고 슬그머니 카지노를 빠져나왔다.

일확천금은 누구에게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라는 멍에를 지면 죽을 때까지도 가족의 소중함도 모르고 인생의 뜻이 뭔지도 모르고 사람답게 살 수 없다. 하늘의 별 따기처럼 쉽게 배당되지 않는 도박게임에 인생 전부를 바쳐서 한밑천 잡으려는 사람은 또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가. 인생 자체가 도박이고 한 방이면 게임은 끝난다는 엽기적인 도박망상증은 꼭 한 사람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사람이 살면서 사람을 바꾸는 길은 어디 있을까. 소매를 떨치듯 미련 없이 과거를 훌훌 털고 한발 내디디는 데는 과감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뒤로 한 보 물러서면 계속 아비규환의 지리멸렬이고 그 걸음 한 보의 차이로 그 사람의 삶을 영원히 바꾸지 못하게 된다. 과단한 실천이 탐욕을 비워주고 건전한 게임 천착으로 인생의 아름다운 꽃길이 보인다.

경마에도 로또복권에도 황금 몽(?)을 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말뚝을 벗어난 망아지처럼 이리 갈리고 저리 갈리고 방향 판이 풀려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사람들한테서 영락없는 내 예전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도박에 인생을 걸다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수없이 보았다. A아저씨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실은 그는 돌아설 수 없이 너무 멀리 와있다. 그런 A아저씨를 보면서 지금이라도 확실히 도박의 길을 끊고 다시 돌아오라고 권했다. 버리면 후련하다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과감히 버릴 것은 버리라고.

이번 호까지 백일몽에서 깨어난 저의 이야기로 연재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기회를 빌려서 새해엔 여러분들도 도박을 통하지 않은 횡재수가 함께하길 발원해봅니다.

류일복(중국동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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