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풍류산하] 헤밍웨이 바다

제주도에 간다. 제주 명물인 방어낚시를 하러 간다. 오전 8시 5분 아시아나 편으로 들어가 오후 4시 45분 대한항공 편으로 돌아오는 짧은 여정이다. 제주 당일치기라면 '비싼 항공료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렇지만 시간을 제대로 잘 쪼개 쓰기만 하면 낚시하고, 술 한잔 곁들여 점심 먹고, 커피까지 마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공항에 내리니 백내장 낀 눈으로 보는 세상처럼 온통 뿌옇고 흐리다. 새벽에 내린 가을비 냉기가 아직 물러서지 못하고 쭈뼛대고 있는 늦여름 지열에 부딪혀 갈 곳을 잃고 헤매는 모양이다. 포도 위에 자욱한 안개는 붉고 푸른 지붕 색깔까지도 흑백사진으로 변환시키는 신통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들을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로스 판초스가 부른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Luna Liena)란 노래도 오늘처럼 는개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는 거리를 걷다 가사를 쓰고 아름다운 곡을 붙이지 않았을까.

이호항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문득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기억해 내곤 무릎을 탁 쳤다. 오늘은 물때도 좋지 않고 본격적인 방어 트롤링이 시작되기엔 조금 이른 철이어서 조황이 불황으로 연결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할 경우엔 '노인과 바다'의 헤밍웨이를 추억하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면 그렇게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일만은 아닐 것 같았다.

미국 플로리다 키 웨스트 앞바다는 넓고 깊다. 소설의 주인공인 산티아고 영감은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다. 그에게는 마놀린이란 풋내기 소년 조수가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이 유능한 낚시꾼을 따라다니며 몇 마리의 고기라도 얻어 오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은 그가 존경하는 영감 곁을 떠나지 못하고 산티아고의 말벗이 되어 주고 있었다. 85일째 되던 날은 운명의 날이었다. 영감은 '큰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낚싯배에 싣고 바다로 떠났다.

키 웨스트 앞바다의 산티아고 영감이나 제주 앞바다의 나의 생각이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영감의 목표는 청새치 한 마리였고 나는 팔뚝만 한 방어 한 마리였다. 영감의 불길한 운수가 내게로 전이되어 왔는지 물살을 가르는 붉은 찌 위로 84란 숫자가 가물거리는 것 같았다.

화투나 낚시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의 원리가 다분히 작용하는 놀이다. 특히 상여 나가는 꿈을 꾸거나 포인트를 잘 잡으면 한 끗발씩 당길 수는 있지만 낚시는 그날의 바람과 수온 즉 물때가 맞아떨어져야지 사람의 손끝에 달린 기술이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배를 타자마자 선장이 던져주는 얼레처럼 생긴 도구에서 루어낚시가 달린 줄을 풀어 바다로 흘려보냈다. 큰 고기가 물렸을 때 기선을 빼앗기지 않도록 '캄발라'라는 인도 물소경기 때 선수들이 고삐를 감아쥐고 엄지에 힘을 주는 방식으로 줄을 잡고 배의 요동에 적응해 나갔다.

산티아고 영감은 석 달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구경 못 했다. 그는 속으로 안달했지만 조수 앞에서는 늠름했다. 나는 입질 한 번 없이 한 시간이 지나자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나에게 낚싯대를 맡기고 뒷전에서 구경하던 지인 둘은 내 뒤통수를 보고도 초조해하는 기미를 알아채는 것 같았다. 애써 산티아고 영감의 불안해하지 않는 기다림의 미학을 흉내 내려고 했지만 바다는 냉정했다.

도플갱어(Doppelganger). 빈 낚시가 두 시간으로 넘어서자 헤밍웨이 바다에 도플갱어라는 환영 같은 생령(生靈)이 낚싯대 주변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그건 다름 아닌 상어 떼에 물어 뜯겨 뼈만 앙상한 청새치를 끌고 해안으로 돌아온 산티아고 영감의 질긴 인내의 모습이었다.

한 마리도 못 잡았다. 그렇지만 헤밍웨이 바다에서 산티아고 영감의 영혼을 만나 아주 값진 추억이란 대어를 낚은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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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활의 풍류 산하'를 끝내려 한다. 2009년 9월 10일 첫 회를 시작한 연재물은 2014년 12월 25일을 마지막 회로 막을 내린다. 268회, 만 5년 3개월 보름 만이다. 세상살이 모든 일이 그렇지만 시작할 땐 희망에 부풀지만 끝낼 땐 회한만 남는다. 연재를 끝내려 하는 필자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사랑으로 키우던 애완견의 임종을 보는 것 같은 슬픔을 느낀다. 연재를 하는 동안 많은 독자로부터 격려 메일을 받았으며 때론 따뜻한 목소리의 응원 메시지를 수없이 받았다.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오랜만에 안식의 날이 찾아왔으니 흐려진 눈을 깨끗하게 다듬어 다시 신들메를 졸라매고 산천으로 나가 볼까 한다. 다시 만날 날까지 안녕.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안녕.

수필가 9hwal@hanmail.net

2014년 12월 25일 구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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