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이 해가 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여보, 아버님댁에 보일러 놔 드려야겠어요."

1990년대 한 보일러업체 CF를 기억할 것이다. 도시로 나가 사는 자식들에게 효심을 자극한 광고로, 그 업체는 시리즈로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강력한 브랜드를 인지시켰다.

그 광고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효에 대한 코드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효는 모든 것의 출발이다. 효를 행하는 사람치고 윗사람을 공격하거나 분란을 조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면에서 효 시리즈 광고는 우리 정서를 자극해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기자의 고향마을엔 경로당이 잘 지어져 있다. 방도 크고 무엇보다 냉난방이 잘돼 있다. 사시사철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잦지만 특히 추운 겨울철에 많이 들른다.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고 이야기도 하고 낮잠도 잔다. 어떨 때는 누구네 집에서 가져온 기름진 음식으로 술 한잔할 때도 있다. 무료하면 며느리 흉도 보고 치매예방에 최고라며 고스톱도 친다. 경로당이 북적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난방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가는 이유는 또 있다. 마을 돌아가는 사정을 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네 둘째 아들은 사업이 잘돼 혼자 사는 형수를 챙겼다는 흐뭇한 이야기도 듣고, 또 누구네 막내는 시집간 지 3년 만에 이혼을 했다는 좋지 않은 이야기도 듣는다. 또 누구는 올 농사를 잘 지어 땅을 샀다는 배 아픈(?)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사랑방인 셈이다.

기자가 고향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하면 십중팔구는 경로당에 있다. 자식으로서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이웃과 함께 있으니 걱정이 덜 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가끔 아들집에 들르면 감옥 같다며 사흘을 못 참고 시골로 내려간다.

마을 출신 자녀들은 부모님 뵈러 고향 갈 때 꼭 경로당에 들른다. 함께 계시는 어르신께 어머니를 챙겨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올린다.

물론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함께 드실 만큼 조금은 많이 싸서 간다. 그곳엔 부모님도 계시지만 이웃 아저씨나 아주머니도 계시기 때문이다. 다음 날 그 소문은 마을 전체로 퍼진다. 자식들이 다녀가지 않은 부모들은 은근히 부담이 된다. 매번 얻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전화를 건다. 한 번 다녀가라고.

처음에는 아들 중심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딸도 자식'이라며 시집간 딸까지 친정을 방문할 때 경로당에 들른다. 물론 사위도 함께한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안부전화보다 직접 고향을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갈 때 부모님에게만 줄 선물 하나만 달랑 들고 가지 말고 두 손에 아저씨나 이웃 어르신께 드릴 따뜻한 선물도 챙겨가자. 이 해가 가기 전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