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를 잃은 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독립운동으로 시작된 고난의 문중 역사가 이제야 끝나려나 봅니다." 24일 안동종가음식체험관 한옥 건축물의 관리권을 받게 된 안동 권씨 부정공파 대곡문중 종손 권대용(67) 씨는 결국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이날 권 씨의 대곡문중은 안동종가음식산업화에 나선 ㈜예미정의 안동시 정상동 소재 3천600여㎡의 부지와 연건평 약 1천600여㎡에 이르는 안동종가음식체험관의 건물 관리권을 위임받기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대곡문중은 이번 양해각서를 통해 연간 1억원에 이르는 임대수익과 함께 건물 일부를 종가로 사용할 수 있게 돼 '종가 없는 종손'의 한을 풀게 됐다.
종가 없는 대곡문중의 사연은 1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00년대 초까지 대곡문중은 천 석 거부로 부와 명성이 하늘에 닿았다. 하지만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강압 아래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 넘겨준다는 '한일강제병탄조약'이 체결되자 종손인 추산 권기일(1886~1920) 선생은 종가를 포함한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마련했다. 이듬해 3월 추산 선생은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건너가 초대 임시정부 국무령인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 휘하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이다가 1920년 8월 신흥무관학교에서 일본군에 체포돼 순국했다.
추산 서거 후에도 대곡문중의 재산은 독립자금으로 대부분 쓰였고, 남은 문중 식솔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명예롭게 '종가 없는 문중'으로 살게 됐다. 원래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에 있던 종가는 그렇게 매각된 뒤 수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지금은 제모습을 잃었다.
대곡문중 이야기는 김희곤(60) 안동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이 쓴 역사서 '독립운동으로 쓰러진 한 명가의 슬픈 이야기'와 '순국지사 권기일과 그 후손의 고난' 등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곡문중 종손 권 씨는 "을미년을 며칠 앞두고 우리 문중에서 큰 선물을 받아 무척 기쁘다. 종친들과 힘을 모아 종가 복원에 앞장서고, 차세대에 문중의 호국정신을 심어주겠다"고 했다.
조일호(48) ㈜예미정 대표는 "종가음식 사업이 끝나는 10년 후엔 아예 소유권까지도 이전해 줄 예정"이라며 "호국충절의 명문 종가와 함께 안동 종가음식 산업화를 할 수 있게 돼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안동 전종훈 기자 cjh4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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