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 '오늘의 작가총서'(민음사)라는 일련의 소설집이 있었다. 그 책 뒷면에 '문학은 시대의 거울'이란 주제로 장중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문학하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나는 늦은 나이인 22살부터 습작에 전념했다. 재주가 둔한 탓에 8년 만에 등단했지만 단 1인에게만 통과를 허락한 것도 낙선의 이유가 될 것이다. 나는 수없이 낙선하면서 내 글이 아직 '시대의 거울'이 되지 못하는구나 하고 생각했고, 창작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느냐, 보이지 않는 독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문학적 싸움'을 할 만큼 맷집을 가졌느냐 하는 물음에 대답하는 연단의 과정으로 알았다.
이 글은 오로지 대구문인협회(문협)를 생각하며 쓰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에 문협 회장 선거가 있었다. 회장에 출마한 분들이 여러 공약을 내걸었는데. 나는 그 공약들을 대부분 이해할 수 없었다. 공약의 공통점은 여차여차해서 문협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나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문협이 아닌 문단(문인들과 각종 문학 관련 시스템)의 활성화와 문학 자체의 증진 없이는 문협의 발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도대체 문협의 발전이란 무엇인가?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숱하게 많으나, 적어도 문협의 발전이 회원의 숫자를 늘리는 것을 가리킴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회원은 문협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지 않을까. 이는 무엇을 차별하고 기득권을 누리자는 의도가 아니다.
독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문학의 특수성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대구문협 상부기관인 한국문협을 보자. 해방 후에 등장한 한국문협은 이후 한국문단에서 중심 역할을 해왔지만, 이즘 들어(사실 꽤 오래전부터) 문단 중심권에서 영향력이 완전히 소멸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엄청난 속도로 회원 수를 늘리면서 문학적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나는 한국문협에서 간행하는 책을 일반 독자들이 구입해서 읽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한국문단의 중심에는 한국문협의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구문협은 아직 건재하다. 대구에 사는 많은 문인들이 참여하고 있어서이다. 하지만 최근 수년 이래로 엄청나게 회원 수를 증가시키면서 정체성을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주요 문인들이 문협 행사에 참가하는 일이 급격히 줄고 젊은 문인들은 대구문협을 쳐다보지 않는다. 이번 선거 때도 송일호 선관위원장이 문협 회원 중에 제일 젊은이가 50대라고 말했는데, 별로 틀린 말이 아니다. 문학이 젊음의 장르임을 상기한다면 이 얼마나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인가.
그만큼 대구문협은 위기에 처해 있다. 발전은커녕 정체성마저 위태롭다. 문협이 과거처럼 대구문단의 중심 지위를 계속 가지려면 최소한 두 가지를 시행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제대로 된 등단자를 회원으로 모셔서 문협의 모습을 되찾는 일이고, 둘째는 협회 주관의 문학상에 위상을 높이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첫 번째이다. 구성원에 따라 문협의 성격이 결정된다. 말할 필요도 없이 문협은 문학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그동안 문협은 신인상을 남발하는 문학지에 대해 제동을 걸지 않고 거꾸로 그 입상자를 회원으로 받아들여 이른바 '등단장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 짧은 지면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연간 한 장르에서 5명 이상의 신인을 물 뿜듯이 배출하는 문학지의 입상자에 대해 문협이 가입을 허락하지 않으면 숱한 모순이 정리될 것이다. 이 정도가 문협이 자기 성격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지 않을까.
오늘날 문학은 절대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작가들은 더 매력적인 작품을 독자 앞에 내놓아야 하거니와, 문학단체는 문인들의 신뢰를 얻고 문학이 독자와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더 훌륭한 시스템을 갖추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엄창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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