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뉴스 아나운서들이 깍듯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 위원장"이나 "김정은 노동당 제1 비서"라고 할 때마다 듣기가 좀 거북스럽다. 북한 체제가 일인독재가 아니라 중국과 같은 명실상부한 당 국가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 정도로 하면 되지 않을까?
한국인들이 북한에 대해 과잉 예의를 갖추는가 하면 미국인들은 너무 무례하게 구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더 인터뷰'란 미국 영화가 그런 셈이다. 다른 나라의 지도자를 비꼬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그를 암살하는 것에 대해 코미디를 만드는 것은 분명 도를 넘어선 것이다. 영화 제작사인 소니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나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런 영화를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누구에 의해서든 오바마 대통령의 암살을 다루는 코미디가 제작됐다면 백악관뿐만 아니라 현 정권을 별로 안 좋아하는 미국인들까지도 분노를 느꼈으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해하기 힘든 것은 소니사가 이 영화에 대한 북한 정권의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할리우드가 영화에서 아시아인들을 비웃거나 비꼬아도 별 비난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다.
미국인들이 아직도 북한을 공산주의 국가로 잘못 보는 것도 문제다. 냉전 시대에는 소련을 비꼬거나 소련의 고급 관리들을 악당으로 보여주는 영화들이 수없이 제작되었고 흥행에서도 많은 성공을 이루었다. 소련 정권이 이런 문화를 크게 비판한 적이 없어서 자연히 북한도 그런 정도로 반응할 것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 정권은 '존엄'에 대한 외부 세계로부터의 모든 모욕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을 북한은 그럴 수가 없다. 2012년에 북한이 한국 예비군훈련장에서 김정일과 김정은의 사진을 사격훈련 표적지로 사용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으면 '무자비한 대응타격'을 하겠다고 한 것은 이 이유 때문이다. 올해 한국 보수 NGO들의 전단 살포에 대한 타격을 하겠다고 한 북한이 경고를 넘어 현실화까지도 했다.
매일신문 독자들은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에 온 북한 응원단을 잘 기억하리라 믿는다. 그때 응원단이 김정일 사진이 나오는 현수막이 비에 젖는 것을 보고 버스를 세우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목소리로 주위에 서 있던 한국인들을 나무라면서 현수막을 거두었다. 누군가가 인공기를 태우는 것을 목격한 것처럼 분노로 치를 떠는 듯했다. 현수막이 자신들을 환영하기 위해 걸려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나라를 도대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먼저 북한이 왜 모든 모욕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강하게 반발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들의 무분별한 대응을 용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1998년에 선군 정치를 표방함으로써 북한 정권 스스로 자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정권의 선전 포스터에서 미국이나 한국 대통령들이 잔인한 '징벌'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 온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소니사가 '더 인터뷰'라는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기도 전에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사가 오바마 대통령을 두고 '잡종'의 '검은 원숭이'라고 비웃었다. 그런 정권이 다른 나라로부터의 모욕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은 위선주의다.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북한의 요구를 들어줄수록 점점 더 많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할 것이다. 만약 소니사가 '더 인터뷰'란 영화를 원래 결정했던 대로 상영하지 않았더라면 타 영화사나 방송사들을 향해 언제든 다시 테러 협박을 하게끔 북한을 장려하는 꼴이 될 뻔했다. 어쨌든 그 영화를 200여 군데의 영화관에서 상영될 수 있게 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바마 정권과 언론의 비판에 떠밀려 내린 결론이기에 뒷맛이 씁쓸하다. 미국 영화사들이 그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암살을 코미디의 소재로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를 바란다. 한편 북한이 언젠가 또다시 꼬투리를 잡아 존엄 모독을 들먹여 가며 협박을 해올 경우, 갈팡질팡하지 말고 용감하게 대처해 주었으면 좋겠다.
브라이언 마이어스/동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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