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여의도 정가에 신풍속도가 연출되고 있다. 후원금이 뚝 끊긴 국회의원들의 아우성이 이만저만 아니다. 초선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비례대표는 "후원금의 씨가 말랐다"며 선배 의원에게 노하우를 알려달라 조르기도 한다. 6'4 지방선거가 있었던 올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는 3억원. 하지만 그중 3분의 1도 채우지 못한 의원들이 꽤 많다는 전언이다. 전국민적 '정치 불신' 탓이 크다.
◆여느 때와 다른 '후원금 가뭄'
말 그대로 연말은 문자메시지 홍수다. 지인에게는 카톡으로 읍소한다. 후원금 좀 달라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 성원해 주세요. 후원계좌. 영수증 발급은 여기로. 후원금 10만원까지는 연말정산 시 전액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한 국회의원 보좌진은 "총동원령이다. 사돈에 팔촌에 혈연, 지연, 학연 할 것 없고, 특히 동기동창에게는 눈 딱 감고 한 번만 도와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의원끼리는 서로 후원금 모금 금액까지는 말하지 않지만 동료 보좌진끼리는 알고 있다. 모두들 지난해보다 올해 유독 더 어렵다고 토로한다"고 전했다.
기존 후원자가 넉넉한 3선 이상 국회의원 중 일찌감치 계좌를 닫은 의원도 여럿이다. 특히 당 고위직이나 국회직이 있는 의원들은 넉넉한 연말을 지내고 있다고 한다.
다른 한 초선 의원은 "노하우를 좀 알려달라고 물으니 '모르는 사람에게 10만원씩 받는 것보다는 잘 아는 사람에게 조금 넉넉하게 후원해 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일부 의원들은 소액다수 기부자가 많다는 선배 의원들에게 비법을 읍소하고 있다는 말도 있다. 특히 ARS로 1천원씩 모아 해마다 후원금 모금액 상위에 랭크되는 서상기 국회의원은 그중 인기다.
100만원 이상 고액 후원자는 확 줄었다. 입법로비의 창구로 후원금 계좌를 활용했던 기업들도 금고를 잠갔고, 일부 기업체 고위직은 지갑을 닫았다. 경기침체가 한몫했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거들었다. 산하기관에서 보내던 후원금도 해석하기에 따라 논란이 될 소지가 있어 뚝 끊겼다.
무엇보다 '후원금이 안 되면 책이라도 내겠다'던 말이 통하지 않게 됐다. 여야 모두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의 하나로 출판기념회를 금지하거나 책값만 받자고 외치면서 정치자금 모금창구로서 출판기념회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후원금, 결국 정치권 하기 나름
해가 갈수록 정치권은 다수 국민의 소액 기부에 기대야 한다. 고액 기부는 늘 말썽의 소지가 되기 때문이다. 정치자금을 적정하게 받고 적절하게 쓰는 정치인에게 다수의 기부가 느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정치후원금 기부 활성화를 위해 3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우선 "기부 채널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용카드 포인트 기부제도는 2005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알고 있는 이가 드물다. 2009년 6억여원의 신용카드 기탁금은 지난해 3천656만원으로 대폭 줄었다. 중앙선관위가 지난해부터 스마트폰 앱을 통해 '스마트폰 정치후원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는 국민이 많지 않다.
무엇보다 '정치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도 급선무다. 정치권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면 자연스레 소액다수 기부도 늘 것이란 얘기다.
입법조사처는 "현재 정당, 후원회 등의 회계보고 후 3개월 이내 선거비용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제한적 인터넷 공개제도를 확대해 모든 정치자금의 수입, 지출 내역을 일상적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소액 기부금 모금 실적이 정당국고보조금 배분에 반영되도록 해 정당과 정치인이 후원금 모금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입법조사처는 제안한다. 현행 정당국고보조금제도는 교섭단체 구성의 의석 수와 득표 수에 따라 정당 보조금을 배분하고 있다. 국고에서 알아서 주니 후원금 마련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여론에는 귀를 닫는다는 지적이다.
2002년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은 차떼기 사건, 즉 대선 불법자금 모금 사건을 일으켰다. 비판여론이 비등해져 2004년 정치자금법이 개정됐고 점차적으로 정치자금 모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금전 기부를 통한 유권자의 정치적 지지는 떨어지고 있다. 정치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할 일을 똑바로 하라는 국민감정이 정치 무(無)후원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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