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발견/최광현 지음/부키 펴냄
왜 우리는 가족에게 상처받고 힘들어할까?
남이 내게 상처를 주면 미워하고 피하면 그만이지만, 그 상대가 가족이라면 그럴 수도 없다. 그래서 가족이 가족에게 주는 상처는 타인이 주는 상처보다 깊고 집요하다. 왜 가족은 가족에게 상처를 줄까.
지은이 최광현 교수(한세대학교 상담대학원 가족상담학과)는 "우리 마음에 생긴 깊은 상처는 대부분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가족 안에서 겪는 문제뿐만 아니라 삶에서 경험하는 불행, 낮은 자존감, 불편한 인간관계 등의 뿌리가 가족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어째서 우리가 가족 안에서 더 외롭고 힘든지, 왜 가족에게 분노하고 상처받는지, 어떻게 해야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지 얘기한다.
책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자신의 불행을 가족에게 돌려준다고 지적한다.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의 행동을 본 적이 없고,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자신의 삶과 부모, 조부모의 삶 사이에는 끊어내기 힘든 유사점이 있는데, 자신이 어떤 가족사에 연루되어 있는지 많이 알수록 세대를 이어 반복되는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내 가족사의 금기와 비밀을 발견하는 작업은 큰 고통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들여다보아야 가족의 상처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고, 가족을 화해시키는 힘과 사랑을 알게 된다."-107쪽-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배 후 미군이 들어오자 이들을 위한 사창가를 만들어 15엔, 당시 담뱃값도 안 되는 비용으로 매춘을 제공했다. 역사적으로 점령군을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 시설을 제공한 나라는 없었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게 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일본 정부는 태평양전쟁 중에 그들이 점령한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자국 병사들이 저지른 성범죄를 알고 있었고, 미군들 역시 자기들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의 보통 여성을 성범죄로부터 구할 의도로 합법적인 매춘을 조장한 것이다. 상대방도 자기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생각이 부부간에 심각한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남편은 괴로울 때 홀로 있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아내가 괴로워할 때 그는 자리를 비켜주고자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아내는 "나를 사랑한다면 절대로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이지 인정머리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나에게 애정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라고 분노를 터뜨렸다. 상대가 나와 같거나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가족을 불행으로 이끄는 단초일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가장으로서 열심히 돈을 벌어오는 것이 가정의 행복을 위한 최선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특히 이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많고 품행이 반듯하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좀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돈을 좀 못 벌어도 다정다감한 남편과 아버지가 되는 것이 좋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또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것이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지은이는 '행복한 가족이 행복한 이유는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족이 불행한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을 인용하면서 '어느 것 한 가지를 잘한다고 가정이 행복해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행복한 가정을 위한 억지 노력'이라면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가족이 행복해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책은 갈등의 악순환을 행복의 선순환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 먼저 악순환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에게 상담을 받았던 한 여성이 "왜 나만 참고, 용서해야 하나요?"라고 반문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당신에게 문제가 더 많아서가 아닙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먼저 빠져나와야 한다. 이것은 우물 펌프의 마중물과 같다.'-본문 267~268쪽
불행한 가족이 화해하기는 어렵다. 운명이 그렇게 짜놓은 것을 사람이 노력한다고 바꾸기란 무척 힘들다. '가족=화목=행복'이라는 등식 자체가 틀려먹은 것이다. 그러니 가정을 유지하자면 일정 부분 체념하고 살아야 한다. 그 체념을 '가족이라는 허울로 가하는 폭력'이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그 폭력을 감당할 수 없다면 가족관계를 깨는 수밖에.
287쪽, 1만3천800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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