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운명의 24시간/ 나카노 교코 지음/ 이봄 펴냄
위기에 처한 왕실을 구하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사랑하는 여자를 살리려 모든 것을 건 남자가 있었다. 여자는 남자를 믿고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왕실의 운명까지 맡겼다. 남자는 페르센, 여자는 마리 앙투아네트.
18세기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책에서만 다루지 않는다. 영화'만화'드라마'소설'뮤지컬 등 대중매체에서 오히려 더욱 많이 다룬다. 왜일까. 위대한 업적이나 모범적인 위인상보다는 인생 자체가 지닌 드라마가 더 강렬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황실의 공주로 태어나 베르사유 궁전에서 화려한 삶을 살다 파리의 단두대에서 비극적으로 처형되기까지. 인생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이보다 큰 낙차를 보인 역사 속 인물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 중심에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베르사유 시절부터 시작된 페르센과의 사랑이 있다. 페르센 백작은 스웨덴 출신 지휘관. 둘의 드라마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진짜 남편인 루이 16세는 그냥 배경 소품쯤으로 봐도 무방하다.
저자 나카노 교코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센의 사랑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시점으로 1791년 6월 20일 단 하루를 포착했다. 당시 프랑스 혁명의 바람이 일고 있었고, 위기감을 느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도주를 결심한다. 페르센은 연인을 위해 기꺼이 도주 계획을 세우고 진두지휘한다. 왕과 왕비는 집사와 가정교사로 변장하고, 페르센은 마부가 돼 마차를 끈다. 이들은 삼엄한 경비를 뚫고 파리를 탈출해 왕의 편인 왕당파가 많이 있는 몽메디 인근까지 가지만, 한 시골 마을인 바렌에서 붙잡혀 파리로 호송된다. 역사 속 '바렌 도주 사건'이다.
저자는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남자 역사가들이 쓴 대로 '낭비벽이 심하고 놀기 좋아하는 어리석은 여자'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페르센 같은 남자의 마음을 오랫동안 강하게 붙들어 맨, 오늘날의 여자들까지도 매료시키는 여자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후대의 작가들에게 매력적인 캐릭터를 제공한 공로만 인정될 뿐이다.
한국에 '무서운 그림'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는 저자는 오스트리아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마리 앙투아네트 평전 일본판을 직접 번역했을 정도로 평소 마리 앙투아네트에 큰 관심을 쏟아왔다. 이 책은 오랜 시간 수행한 연구 및 수집한 자료들을 토대로 저자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것이다. 한 편의 로드무비나 추격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서도 역사의 섬세하고도 진중한 재현을 잊지 않는다. 324쪽, 1만4천800원.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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