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국립미술관과 반 고흐미술관 그리고 모던아트와 동시대미술을 위한 시립미술관이 지척에 모여 있다. 몇 년 전 시립미술관을 찾았을 때 이른 시간이었지만 입장권을 사는 줄이 길게 뻗어 있었다. 차례를 기다려 표 파는 직원 앞에 이르자 무엇을 볼 것이냐고 물었다. 의외의 물음이었지만 전시라고 대답했더니 그림을 보러 왔으면 건너편 미술관으로 가라는 말이 돌아왔다. 직원은 지금 이곳에는 그림이 없다는 설명을 더했다. 아마도 렘브란트나 고흐의 페인팅 작품을 기대하고 온 사람처럼 보였던 모양이었다. 좀 황당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곳의 설치작품이나 영상 위주의 전시물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더러 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관람객들은 거의 젊은 층이었다.
현대미술은 전통적인 페인팅 작품에 비해 너무 다른 종류의 미술인 것은 맞다. 2011년 1월에 본 그 전시는 '모뉴멘탈리즘'이란 제목으로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19명의 비디오, 설치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중에서 마리안 플로트론의 '해고'란 작품은 너무 인상적이었다. 기업에서 한 여성 고용인을 내보내면서 '해고'란 말 대신에 애매하고 어려운 용어인 '이동성이 있다'란 교묘한 표현을 써 통보하면서 일어나는 내용을 담은 8분짜리 영상이었다. 노동자들에게 생존이 걸린 심각한 문제를 고도로 세련된 언술행위로 돌리며 마치 별일 아닌 듯 대하는 회사 측의 태도를 보여주는 한편 신자유주의 시대의 냉혹함에 희생되는 투박한 순진함이 얼마나 더 인간적인 것인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동시대미술의 매력은 현실을 통찰하는 이런 신랄함에 있는 것 같다.
동시대미술가들이 전통적인 재현방식이나 매체로는 전달하기 힘든 일상의 정치적인 모습을 소재로 선택하는 데 있어 영상매체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독일 프랑크프루트 쉬른미술관에서는 현역 영상작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영향을 받은 다른 한 작가의 작품을 매달 동시 상영하는 'Double Feature, ARTISTS SHOW THEIR MOVIES'라는 전시를 장기 프로젝트(3년)로 이어가고 있는 것에서 현대미술에서 영상이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동시대미술의 또 다른 특징은 현재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불복종'이라는 전시에서 목격된다. 현대사회의 각종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고 권력기관들의 부당한 집행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정신을 고취시키는 한편 시위에 참여할 때 필요한 물품들을 위한 디자인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 미술관이 공예와 디자인 박물관이란 점을 생각하면 던지는 의미가 크다.
이 세계적인 미술관의 정면 출입문 양쪽에 커다란 모자이크 작품 두 점이 내걸려 있는데 각각 'Power to People'과 'History is a Weapon'이란 슬로건이 새겨져 있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예술은 세계를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세상을 두드려 만드는 망치다' '불가피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로 민주주의에 반하는 모든 정책이나 자본의 횡포에 맞설 것을 주장하는 문구를 써넣었다. 주로 모자이크 작업으로 공공예술을 하는 캐리 리차르트 작가가 왕실과 귀족이 세운 미술관의 정면 장식으로 민중의 불복종 저항운동을 주제로 한 작품을 내건 것도 눈길을 끌지만 그만큼 영국 민주주의의 건강함을 미술의 힘으로 알리고 있는 것 같아 부러웠다.
오늘날 미술관들의 공통된 목적은 예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파리 현대미술관과 나란히 마주 보고 있으면서 동시대미술의 기획전이 주로 열리는 '팔레 드 도쿄' 건물 앞에서 비를 맞으며 입장을 기다리고 서 있는 관람객들의 길게 늘어선 줄을 사진에 담아본다.
김영동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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