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남강(南江)은 가지 않습니다.
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섰는 촉석루는 살 같은 광음(光陰)을 따라서 달음질칩니다.
이것은 한용운의 시 '논개(論介)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廟)에'의 첫 부분이다. 이 부분을 보면 누구나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흐르는 남강이 가지 않는다는 것은 술 먹고 운전하다 걸려 놓고서 '술은 먹었지만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한 어느 방송인의 말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뒷부분을 보면 더 이상하다. 멀쩡히 잘 있는 촉석루는 광음(시간)을 따라서 달음질치다니, 시인이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남강이 가지 않는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촉석루가 달음질친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답이 풀린다. 실제로 강물은 흐르고 흐르지만 남강에는 왜장을 끌어안고 죽은 논개의 이야기와 그 정신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남강은 가지 않는다고 한 것은 실제의 남강이 아니라 남강에 남아 있는 논개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촉석루 건물은 그대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촉석루에서 있었던 일과 논개의 정신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빨리 잊히고 있다. 남강과 촉석루를 있는 그대로의 차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신의 차원에서 보기 시작하면 논개의 정신은 남강에 남아 있지만,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겉으로 보면 두 명제들끼리 서로 모순이 되거나 상식에 맞지 않아서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차원을 달리해서 보면 더 큰 진리를 담고 있는 수사적 표현을 역설법이라고 한다. 역설법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무의미하게 하는 말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에 해석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 수 있지만 그 의미를 깨닫고 나면 깨달음에서 오는 희열이 크다. 불교에서는 그래서 역설법을 통해 설법하는 내용이 많은데, 한용운 시인이 역설법을 자주 사용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
지금 우리의 사회를 둘러보면 역설이 넘쳐난다. 그렇지만 그 역설은 참신하지도 않고, 깨달음도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연말 정산 준비를 하다 보니 올해 소득 공제 원칙은 한마디로 '서민 증세는 안 하지만 세금은 더 내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출산은 장려하지만 6세 이하, 출산'입양, 다자녀 추가 공제는 폐지하겠다'고도 한다. 얼마 전엔 유출된 문서에 대해 '정부 공식 문서가 맞지만 찌라시다'라는 발표가 있었다. 정부가 찌라시의 생산지가 아니라면 분명히 역설법을 사용한 것이 맞는데, 여기에 어떤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지는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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