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날 때부터 맹인입니다'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프랑스 파리에서 구걸하는 맹인이 있었다. 구걸한 액수가 얼마나 되느냐고 한 행인이 물었다. 10프랑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행인은 맹인의 팻말에 다른 말을 적어놓았다. 한 달 뒤 행인이 맹인을 찾아갔을 때 맹인은 행인의 손을 잡고, 10프랑이었던 것이 요즘은 50프랑이 되었다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맹인입니다. 대신 나는 봄을 볼 수 없습니다'로 바꾸어 적었을 뿐입니다"라고 행인이 말해 주었다.
폭죽과 함성 속에서 힘차게 울러 퍼지던 제야의 종소리가 아직 귓가에 삼삼한데 갑오년의 날짜가 달랑 이틀 남았다. 그동안 사계절은 질서정연하게 자리바꿈하였고 을미년 새 달력이 걸릴 준비를 마치고 있다. 나무들도 새 옷을 입기 위해 낡은 옷은 미련 없이 다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칼바람을 견디고 있다. 겨울이 가고 있다는 것은 새봄이 오고 있다는 증거다. 연말이면 실패했던 새 도전을 위하여 아이러니한 일도 생긴다. 애연가는 담배를 끊기 위하여 원도 한도 없이 담배를 피우고, 다이어트에 도전할 사람은 살을 빼기 위해 먹고 또 먹는다. 행여, 용서하지 못할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 뼈를 깎는 아픔으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지? 담배를 끊으려면 담배 생각이 더욱 간절하듯, 다이어트를 결심하면 음식의 유혹은 왜 그리 힘이 센지?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을 용서하려고 마음을 다스릴수록 왜 잊어야 할 것은 잊히지 않고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다 잊어버리는지? 용서치 못할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기쁨의 걸림돌이 되며 새해를 맞아도 새해를 볼 수 없고, 봄이 와도 봄을 볼 수 없는 맹인과 같다.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꼭 맞기 때문이고, 허리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꼭 맞기 때문이고, 마음이 시비를 잊는 것은 마음이 꼭 맞기 때문이다. '장자'에 나오는 글귀다. 신발이 발에 맞지 않으면 계속 신발을 의식하고, 안경이 눈에 잘 맞지 않으면 계속 안경에 신경이 쓰인다.
가난을 용서치 못해 부모를 버린 자식, 효도 때문에 원수가 된 형제, 과도한 집착으로 이별한 연인,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인한 깊은 상처… 모두가 작은 것 하나를 맞추지 못해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 가장 먼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아직도 많이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먼저 손을 내밀어 보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용서와 화해의 감동으로 을미년의 찬란한 태양은 깊은 바다에서 힘차게 떠오를 것이다. 남아있는 소중한 이틀이 용서와 화해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사다난했던 갑오년아 안녕히.
장혜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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