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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상황 제대로 된 분석이 변화의 첫 걸음

인터넷 쇼핑으로 옷을 샀다. 그런데 도착한 옷을 입어보니 맞지 않았다. 내 신체가 변한 걸 모르고 예전에 입던 치수로 주문한 탓이다. 요즘 일반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시도 가운데 상당수가 이런 형국이다. 학교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지 않은 채 그저 보기 좋은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괜찮다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도입하다 보니 정작 학교 경쟁력 강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흔히 명문고로 꼽히는 학교들을 가 보면 교육과정이나 프로그램은 각기 다르지만 확실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학교의 현 상태에 대한 분석을 우선시한다는 점이다. 학생, 교사, 교육 여건 등의 변화를 면밀히 분석해야 학교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이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학교는 매년 바뀐다. 최고 학년의 학생들이 졸업하고 신입생이 들어온다. 학년이 올라가는 재학생들의 역량이나 선호도 역시 변화가 생긴다. 교사들의 보직도 바뀐다. 평균 4년 주기로 학교를 옮기는 공립학교의 경우 교사들의 변화는 더욱 크다. 여기에다 주변 학교의 경쟁력 추이, 입시제도 변화, 직업선호도 변화 등으로 범위를 넓혀 가면 학교는 어느 한 해도 같을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교육과정이나 학교 프로그램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병명이 같다고 해서 과거의 환자에게 행한 치료와 처방한 약을 전혀 다른 환자에게 똑같이 제공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다. 교육과정이나 프로그램은 학교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년도 학교 교육계획을 짜고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방과후 프로그램을 결정하기 전에 학교의 상태에 대한 분석을 선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학교가 보일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나 경쟁력 강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내년 학교 소개서가 작년이나 올해 학교 소개서와 달라질 게 없다. 이는 곧 교사와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대학의 고교 평가에서 좋은 인상을 줄 수 없고, 진학 실적 향상도 꿈꾸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기영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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