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건강한 가족관계 회복, 또 다른 안전대책

'가족이란 아무도 보는 사람만 없다면 슬쩍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다.'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이자 코미디언인 기타노 다케시가 한 말이다. 어찌 보면 잔인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내다버리고 싶어도 늘 곁에 둘 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올 한 해 대구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가족에 의한 살인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시민들에게 충격과 공분을, 때로는 안타까움을 안겼다.

지난 4월 두 살배기 아들을 방치해 숨지게 한 비정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아들을 때리고 손으로 코와 입을 막아 숨지게 했다. 게임을 하러 외출하려는데 잠을 자지 않고 보챘다는 것이 살해의 이유였다. 더욱이 아들의 시신을 한 달여간 내버려두었다가 쓰레기봉투에 담아 길가에 버려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같은 달 '칠곡 의붓딸 살해 사건'도 대구를 한동안 술렁이게 했다. 지난해 8월 계모인 A(36) 씨가 8살 의붓딸을 때린 뒤 복통을 호소하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결국 장간막 파열에 따른 복막염으로 숨지게 한 사건이다. 지난 4월 대구지법에서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 인터넷 카페의 회원들은 패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A씨에게 사형을 선고하라며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 9월에는 파킨슨병을 앓는 부인을 30년간 돌보다가 너무 지쳐 부인을 살해한 7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의 극단적인 행위는 용서할 수 없지만 재판 과정에서 오랜 기간 병수발에 지친데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사연이 알려지면서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다.

이들 사건을 지켜보면서 '가족 해체'가 새삼 뇌리를 스친다. 개인적인 악행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사건들의 배경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무너진 가족관계'라는 공통분모가 숨겨져 있다. 이들은 부인과의 별거나 재혼, 자식과 따로 사는 환경 등에 놓여 있었다.

가족은 세상에 지친 우리가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존재이자 마지막으로 위안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후의 보루인 가족이 여러 가지 이유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평균이었던 5인 가족이 지금은 8%에 불과하다. 반면 1인 가구의 비율은 9.0%에서 25%로 급증했다. 가족 간의 대화 단절도 문제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가족 간 하루 평균 대화 시간이 30분 이내라고 답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가족 해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성해야 할 시점에 왔다. 우리는 가족 해체에 따른 대가를 너무도 비싸게 치르고 있고, 이렇게 가다간 자칫 가족마저도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도 느낀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을 비롯해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몇 년 사이 큰 인기를 끄는 이유도 현실의 심각한 '가족 해체'에 대한 우려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족 해체는 더 이상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치열한 경쟁과 빈부격차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찾아야 맥을 짚을 수 있다. 사회 전체나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함은 물론이다.

건강한 가족관계로의 회복, 우리 세대가 풀어야 할 또 다른 '안전 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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