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그대를 보내며

어디선가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다. 온통 컴컴한 걸 보니 한밤중이다. 올 한 해도 의미 없이 보냈다는 생각에 뒤척이다 설핏 잠이 들었는데, 아내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이 저만치 달아나고 말았다.

어젯밤 제사를 지내느라 그렇게 바쁘게 움직였으니 코를 골 만큼 피곤했으리라.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인적 없는 아파트 마당에 나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놈의 담배, 신년에 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건만, 결국 실천하지 못하고 또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누구는 담뱃값을 인상하는 정부 정책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끊겠다고 하는데 나는 그럴 마음도, 그럴 용기도 없다. 아마 내년에도 정부 욕을 하며 구차하게 담배를 피워댈 것이 분명하다.

별이 유난히 반짝인다. 겨울밤, 도심에서 저렇게 밝게 빛나는 별을 본 적이 언제였던가. 세찬 바람이 불고 별은 반짝이는데 상념은 끊이지 않는다. 무엇을 하며 한 해를 보냈던가. 신년에 결심했던 일을 한 가지라도 이뤘던가. '이제 그만 훌훌 털고 보내주어야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하루를 매만지며/ 안타까운 기억속에 서성이고 있다…(중략)' 윤보영의 '송년의 시'는 매년 후회하고 번민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슬픈 노래다. 원래 세월이란 것은 할 말 다 못 하고 떠나보낸 옛 애인과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언제나 진한 아쉬움과 안타까움만 남는다.

'송년에 즈음하면/ 자꾸 작아질 뿐입니다/ 눈 감기고 귀 닫히고 오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모퉁이 길 막돌멩이보다/ 초라한 본래의 내가 되고 맙니다…(중략)' 유안진의 '송년에 즈음하면'은 '송년 우울증'에 걸린 우리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는 시다. 이맘때가 되면 나 혼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번민과 후회 속에 지난 일 년을 곱씹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해인 수녀의 '12월의 촛불 기도'는 송년 때의 비참하고 우울했던 마음이 희망과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 해가 왜 이리 빠를까?/ 한숨을 쉬다가/ 또 새로운 한 해가 오네/ 반가워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설렘으로 희망의 노래를/ 힘찬 목소리로 부르렵니다…(중략)' 낙관적이다. 오늘, 내일이 지나고 새해가 오면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니 그보다 멋진 일이 있을까. 올해 절망하고, 꺾이고, 포기하고, 잘못했던 일들은 훌훌 날려보내자. 누군가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으니 내년에는 희망이란 놈을 좇다 보면 좋은 일만 가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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