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12년간의 발자취…65억원의 온정, 593명의 희망

2014년 갑오년(甲午年) 한 해 동안 매일신문은 '이웃사랑' 코너를 통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50명의 사연을 소개했다. 한 명 한 명에게 독자들이 모아준 온정을 전할 때마다 그들은 깊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반드시 일어서겠다고 다짐했다. '절망'을 딛고 '희망'을 품자 거짓말 같은 '기적'도 일어나고 있다. 새 삶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는 두 주인공을 만나봤다.

◆화상 소녀 아현이 "마음 상처까지 씻겨"

9개월 만에 다시 만난 다섯 살 아현이(3월 12일 소개).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얼굴은 이제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친구들과 장난도 치며 또래 아이들의 일상으로 돌아온 아현이는 이제 자연스레 엄마(이은정 씨)에게 어리광도 부린다. 은정 씨는 요즘 부쩍 멋을 부리는 아현이가 예쁜 원피스가 어울리는 아이로 커 가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 푼 한 푼 귀한 마음을 모아준 매일신문과 기부자들에게 감사함만 가득하다고 했다.

"아현아, 이제는 아프지 않니?"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현이. 정말로 화상의 흔적들은 상당히 지워져 있었다. 엄마는 "상처 난 곳에 연고를 바르면, 흉터가 몰라보게 빨리 사라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랑의 연고' 덕분에 갈수록 상처는 더 흐려져 얼마 후에는 온전한 피부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아현이를 처음 본 3월 초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아현이는 2월 20일, 엄마가 목욕을 시키려고 연탄난로 위에서 데우던 냄비의 물을 뒤집어써 배와 허리, 허벅지에 심한 화상(2도)을 입었다. 이 작은아이는 수술과 붕대를 교체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잘 이겨냈지만 엄마는 자신이 소홀했던 탓이라는 마음의 상처와 함께 치료를 하느라 늘어난 빚 때문에 또 한 번 울어야 했다.

빠듯한 살림살이였지만 6남매의 성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엄마. 막내딸을 돌보느라 일도 그만두는 바람에 밀린 치료비와 살아갈 날이 막막하기만 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어요."

엄마는 여러 번이나 기적 같은 일이었다 말하며 이웃들의 고마움에 눈물을 훔쳤다.

지난 3월, 아현이의 사연이 소개되자 68개 단체, 162명의 독자가 1천930만4천500원을 보내왔다.

또 한 번의 수술과 병원비. 열흘을 바르는 데 15만원이 드는 연고 가격. 독자의 성금은 아현이 치료에 전액 쓰였다.

다행히 아현이도 잘 참아줬다.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아현이의 발걸음은 씩씩하다. 어린이집에선 대장 노릇을 한다. 그때의 충격이 컸던 탓인지 집에 들어와선 난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이웃의 사랑으로 아현이의 화상 자국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함께 아물어가고 있습니다. 잘 키우겠습니다. 평생 갚아야 할 이 빚은 또 다른 사람에게 저 또한 사랑으로 되돌려주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는 그렇게 또 한 번 울먹였다.

◆종합병원 민하 씨, "요리사 꿈 찾았어요."

예쁘게 보이고 싶다며 립스틱을 꺼내 바른 박민하(21) 씨. 이내 수다를 떨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녀에게서 불과 몇 개월 전 병실에 누워 힘겨워했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연애 상담을 해달라며 까르르 웃는 그녀 역시 스물한 살 아가씨로 돌아와 있었다.

홀로 아버지와 4명의 동생을 돌보다 급성 A형 간염, 폐결핵, 베체트병 등 7, 8가지 병으로 쓰러졌던 민하 씨는 4월 23일 이웃사랑에 소개됐다. 당시 병원을 찾았을 때 그녀는 169㎝의 키에 몸무게가 불과 39㎏밖에 나가지 않는 몰골이었다.

간염 때문에 얼굴에는 시커먼 빛이 돌았고 입술도 바싹 말라 있었다. 머리카락이 빠져 듬성듬성 빈 공간을 내보인 머리도 애처롭기만 했었다.

"퇴원하고서는 몸무게가 10㎏ 정도 늘었어요. 얼굴빛도 좋아졌고요. 예전처럼 긴 생머리로 기르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머리카락도 새로 나고 있어요."

요즘엔 부쩍 건강에 신경을 쓴다. 전에는 먹지 않던 채소도 챙겨 먹고 운동도 꾸준히 한다.

"여전히 2주에 한 번은 치료를 받고, 면역계 이상으로 전신에 염증 반응이 일어나는 루프스는 평생 관리하며 살아야 하지만 이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죠."

지금은 아프기 전의 씩씩한 모습을 되찾았다. 어릴 때 다섯 남매를 버리고 떠난 엄마와 자식을 돌보지 않는 아빠 때문에 가장 노릇을 해야 했던 민하 씨. 그런 그녀가 지난해 11월 갑자기 쓰러졌다.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밤낮없이 일을 하다 영양실조에 걸린 것. 하지만 병원비 걱정에 치료는 받을 생각조차 못 했다. 그러다 혼자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돼서 병원으로 실려갔다. 급성 A형 간염 등 8가지 병이 민하 씨를 짓누르고 있는 상태였다. 호흡이 힘들어 산소호흡기를 달고 생활해야 할 정도로 증상이 좋지 못했다.

그런데도 온통 동생들 걱정만 했던 민하 씨. 이 사연이 소개되자 1천469만6천원의 성금이 모였다.

그녀는 이후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고 지난 9월에 퇴원했다.

건강을 되찾으면서 그동안 미뤘던 일을 준비하고 있다. 요리사가 꿈이었던 그녀는 이참에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겠다며 여러 교육기관을 알아보고 있다.

"동생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겠다는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요. 하루빨리 요리사가 돼 컴퓨터 자격증을 따고 싶어 하는 고3 동생을 학원에 보내주고,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 하는 막내 뒷바라지도 해주고 싶어요. 제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꿈을 키울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따뜻한 이웃 사랑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