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이케아 세대

"전셋집에 뭐 한다고? 평생 살 거야?"

2013년 12월, 2년간 살 전셋집을 계약하고 본격적인 집 꾸미기에 몰입한 나를 보고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결혼해서 예쁘게 꾸미고 살라"며 속 모르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항상 '집'이 그리웠다. 고3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고향집을 떠나 살았고, 대학에 입학한 뒤 1년 계약의 하숙과 자취방을 전전하며 숱하게 이사했다.

짐은 항상 최소화했고, 가구는 사치였다. 10년 넘게 타지 생활을 하자 고향집에서 내 방의 흔적은 서서히 사라졌다. 한때 '내 방'이었던 공간에서 어떤 날엔 고추가 마르고 있었고, 김장철을 앞둔 날에는 추운 날씨 탓인지 마당에 있어야 할 무가 책상 옆에 잔뜩 쌓여 있었다.

이 도시에서 칙칙한 자취방이 아니라 진짜 집에 살고 싶었다. 새집을 구할 때 내건 첫 번째 조건은 거실과 침실은 반드시 분리돼야 할 것!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신발장이 보이지 않아야 했다. 집의 주제도 정했다. 퇴근하고 빨리 돌아오고 싶은 아늑한 집을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목표를 이루는 과정은 고단했다. 너그러운 집주인의 동의를 얻어 낡은 부엌 타일에 노란색 페인트칠을 할 땐 '괜한 일을 시작했다'며 스스로 나무랐고, 바퀴 달린 의자에 올라서서 혼자 침실 한쪽 벽을 도배하다가 의자가 움직이는 바람에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기도 했다.

문제는 가구였다. 주머니 가벼운 싱글족에게 스웨덴 가구 브랜드 '이케아'는 구세주였다. 침대와 소파, 책상, 의자는 모두 이케아에서 구매했고, 혼자 조립을 하도 많이 해 조립 왕이 될 지경에 이르렀다. 반갑게도 이케아는 지난달 한국에 정식 매장을 열었다. 이케아의 장점은 싼 가격이다. 싱글 침대 프레임을 단돈 6만원에 살 수 있고, 커피 두 잔만 덜 마시면 9천원짜리 보조 테이블을 살 수 있다. 이케아뿐 아니라 '자라홈' 'H&M홈' 등 해외 패스트리빙 업체(유행에 맞춰 싼 가격의 침구, 소품 등을 판매하는 곳)들이 하나둘씩 한국에 진출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집의 의미가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유행에 맞춰 옷을 사듯 가구와 침구를 사고, 집을 꾸미는 행위는 집을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만 봤던 예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2년 계약의 불안정한 주거 공간 꾸미기에 열광하는 나 같은 이들을 보고 '이케아 세대'라고 한단다. 이것저것 본 게 많아서 안목은 글로벌한데 집 살 돈은 없는 이들이 임시 거주의 공간을 내 집처럼 만들기 위해 이케아를 소비하는 것이다.

부모 도움과 은행 대출 없이,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 자기 명의의 집을 살 수 있는 젊은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이케아는 언제 내 소유의 집을 갖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현실 속에서 내 '집'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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