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슬람 극단주의 광기 공포와 슬픔의 현장]<1>예즈디 쿠르드족의 비극

중무장 IS 무차별 학살…황야 내몰린 피란민 숱하게 굶어 죽어

이슬람국가단의 공격으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쿠르드 예즈디인들이 메소포타미아의 평원에 난민촌을 형성해 살아가고 있다.
이슬람국가단의 공격으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쿠르드 예즈디인들이 메소포타미아의 평원에 난민촌을 형성해 살아가고 있다.
이슬람국가단의 공격으로 부모와 가족 13명을 잃은 쉬린이 말을 하던 도중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이슬람국가단의 공격으로 부모와 가족 13명을 잃은 쉬린이 말을 하던 도중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이슬람국가단에 사흘간 포로로 잡혀 있다 탈출한 예즈디 쿠르드인 타하릴(왼쪽)이 난민촌에서 탈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슬람국가단에 사흘간 포로로 잡혀 있다 탈출한 예즈디 쿠르드인 타하릴(왼쪽)이 난민촌에서 탈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필자 하영식 씨는 1965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1980년대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1992년 한국을 떠났다. 영국 셰필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영국, 멕시코, 이스라엘, 폴란드, 그리스 등 50여 개국을 누비며 선교사, 동양문화 강사 등으로 활동하다 국제분쟁 전문 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국내외 매체에 여러 차례 기고하면서 본지에는 2001년에 이슬람문화 탐방 시리즈 기사를 10회에 걸쳐 연재했고 지난해 9월 우크라이나 내전 기획 기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필자 하영식 씨는 1965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1980년대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1992년 한국을 떠났다. 영국 셰필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영국, 멕시코, 이스라엘, 폴란드, 그리스 등 50여 개국을 누비며 선교사, 동양문화 강사 등으로 활동하다 국제분쟁 전문 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국내외 매체에 여러 차례 기고하면서 본지에는 2001년에 이슬람문화 탐방 시리즈 기사를 10회에 걸쳐 연재했고 지난해 9월 우크라이나 내전 기획 기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굿바이 바그다드'(2004), '세상에서 가장 느린 여행'(2005), '남미인권기행'(2009),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2010) 등이 있다.

시리아에서의 전쟁은 100년 전 세계 1차대전 후에 그어졌던 중동 일대의 국경선들을 무효화시키고 있다. 지난해 9월 1일 이슬람국가단(ISIL)은 북부 이라크의 모술시(고대도시 니느웨)를 점령하면서 중동 일대에서 가장 위협적인 세력으로 떠올랐다.

이슬람국가단의 공격 목표는 주로 쿠르드인들이며 이라크 북부지역에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던 쿠르드 예즈디인들을 공격해 수백 명을 학살하고 이들을 삶의 터전에서 내쫓아버렸다. 또한, 시리아 북부에서 쿠르드 민족의 자치국가를 만들어 중동에서는 최초로 민주주의를 실험해오던 코바니시를 공격해 폐허로 만들어버렸고 지금도 전쟁을 진행하는 중이다. 코바니에서 전쟁이 진행되면서 그동안 감춰져 왔던 터키의 정체성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고, 인류의 적인 이슬람국가단에 홀로 맞서 싸우는 쿠르드 민족이 세계무대에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필자는 코바니의 터키 도시인 수르츠에 머물면서 한국전에 참전했던 쿠르드 용사들을 만난 뒤 감춰졌던 역사의 진실을 조금 더 자세하게 엿볼 수 있었다.

◇중무장 IS 무차별 학살…황야 내몰린 피란민 숱하게 굶어 죽어

터키의 동부지역에 있는 '비란셰히르'시에서 남쪽으로 20㎞ 정도 벗어나면 메소포타미아의 광활한 평원이 드러난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대는 허허벌판인 이곳에는 지난해 8월 말부터 천막촌이 세워졌다. 이슬람국가단(ISIL)의 학살을 피해 터키로 넘어온 예즈디 쿠르드 난민 중 340명이 이곳에 천막을 치고 살고 있다. 지난해 8월 말까지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5천 명의 예즈디 쿠르드인들이 터키로 넘어왔지만, 불법으로 터키로 넘어온 난민들은 거의 2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난민촌에 도착하자 몇 명의 젊은 사람들이 주차장을 만들려고 땅을 고르고 있었고, 천막 앞에서 여인들이 길어온 물로 그릇을 씻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해어진 옷과 신발도 없이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난민촌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나왔다. 우리 일행이 천막촌에 모습을 드러내자 금방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난민들의 대표와 수염을 길게 기른 예즈디교의 성직자가 와서 우리 일행을 맞았다.

난민촌의 호데다르 대표가 머무는 천막으로 초청을 받아 들어가자 앉을 틈도 없이 빽빽하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난민촌 대표에게 왜 이슬람국가단이 쿠르드 사람들을 죽이려 하는지 물었다. 그는 "이들(이슬람국가단)은 무슬림이 아니면 무조건 죽일 생각을 한다. 또한 이들은 무슬림도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인다"고 이슬람국가단에 대해 성토했다. "우리 예즈디 사람들은 항상 평화롭게 살아왔고 절대로 다른 민족이나 부족들을 공격하거나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언제나 다른 민족들은 우리를 공격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예즈디인들의 처지를 한탄했다.

모인 사람 중에서 몽골 사람처럼 건장하게 생긴 한 난민이 말문을 열었다. '타하릴'이라는 이 사람은 사흘간 이슬람국가단에 포로로 잡혀 있다 도망쳐 나왔다고 했다. 자신을 포함해 16명의 '페시메가' 병사들이 포로로 잡혀 13명은 처형됐고 자신을 비롯한 세 명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그곳을 탈출해 왔다고 했다. 그는 그곳에서 이슬람국가단에 의해 머리가 잘린 두 구의 시체를 봤다고 증언했다.

곧이어 난민촌 대표는 예즈디인들이 이슬람국가단의 만행을 피해 피란 오게 된 경위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슬람국가단은 6월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이라크군이 도망하면서 모술을 아주 쉽게 점령했고 이들이 남기고 간 최신 무기와 중화기로 무장해 일대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8월 3일, 이슬람국가단은 예즈디 쿠르드인들이 모여 사는 이라크 북부의 '신자르' 지역을 공격해 들어왔다. 이들에 대항해 방어선을 쳤던 쿠르드족의 '페시메가'군은 중화기로 무장한 이슬람국가단에 밀리자 지역민들에게 아무런 고지도 없이 모두 도망가 버렸다. 이 때문에 예즈디인들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몸만 빠져나와 피란을 떠나야 했다. 미처 피란을 떠나지 못한 노인들과 부녀자들, 아이들까지 모두 2만 명의 예즈디인들이 이슬람국가단에 포로로 잡혔다. 부녀자들은 대부분 성 노예로 노예시장에 팔려나가 서로 사고파는 물품 대상이 됐다. 현재 노예시장에 팔린 예즈디 여인들의 몸값은 1천에서 5천유로이고,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가격은 5천에서 1만유로로 가격이 매겨져 있는 상태다.

이슬람국가단의 공격이 시작되자, 아무런 준비도 없이 겨우 몸만 빠져나온 수만 명의 예즈디 쿠르드인들은 모두 산으로 피란해갔지만, 그곳에는 물도 음식도 없었다. 8월 중동의 무더위는 물과 음식이 없는 상태로 사흘을 견디던 수백 명의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당시 산으로 피란했던 수만 명의 예즈디인들은 굶주림과 갈증으로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고 한다. 사흘이 지나면서 산으로 날아온 미군 헬기에서 물과 음식이 낙하산에 매달려 공수되기 시작했다. 미군들은 예즈디인들이 모여 있는 산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음식과 물을 이슬람국가단이 통제하는 지역에 떨어뜨리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대표는 이로 말미암아 물품 공수가 연기되면서 많은 예즈디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이 머무는 산으로 쿠르드 게릴라들이 나타나 예즈디인들을 터키의 국경 내로 안내하고는 사라지는 일도 벌어졌다. 예즈디인들은 7일 동안 산에서 버티다가 터키 국경을 넘어 지금의 이곳으로 피란해왔다는 것이다.

대표의 천막을 나온 우리 일행은 가족을 잃은 몇 명의 난민들을 만나봤다. 23세의 나이로 얼마 전에 결혼한 쉬린은 자신의 친정 식구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고 울먹였다. 부모와 형제자매, 사촌들 등 모두 13명이 이슬람국가단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이 사실은 친정집의 이웃에 사는 친구가 전해줬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모두 방안에 갇히고 나서 물과 음식이 없어 굶어 죽었고 남은 식구들은 이슬람국가단이 어디론가 데려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쉬린의 가족 사례처럼 많은 사람이 가족을 잃었다는 증언을 했다. 특히 샬론(21)은 형이 이슬람국가단에 체포돼 어디론가 끌려갔고 할머니는 자신과 함께 산으로 피란왔다가 굶어 죽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굶어서 죽어가던 할머니에 대해 얘기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제 그는 가족들을 모두 잃어 갑자기 고아가 돼버렸다. 그의 눈물은 필자의 가슴까지도 아프게 만들었다.

이슬람국가단에 공격을 받은 예즈디 쿠르드인들은 지금 터전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터키와 이라크 북부지역에서 피란민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가족을 잃은 악몽으로 인해 많은 예즈디인들은 더는 고향인 신자르지역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고 있다. 이들이 악몽을 회복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은 세상 어디에 있을까?

※필자 하영식 씨는 1965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1980년대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1992년 한국을 떠났다. 영국 셰필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영국, 멕시코, 이스라엘, 폴란드, 그리스 등 50여 개국을 누비며 선교사, 동양문화 강사 등으로 활동하다 국제분쟁 전문 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국내외 매체에 여러 차례 기고하면서 본지에는 2001년에 이슬람문화 탐방 시리즈 기사를 10회에 걸쳐 연재했고 지난해 9월 우크라이나 내전 기획 기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굿바이 바그다드'(2004), '세상에서 가장 느린 여행'(2005), '남미인권기행'(2009),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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