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도청 시대, 첫 도백으로 역사의 현장에 서는 김관용 경상북도지사. 그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화려한 이력서를 갖고 있다. A4용지 한 장이 가득 찬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자세히 뜯어보면 오늘의 화려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 행정고시에 합격했지만 그는 국세청의 '만년 사무관'이었다. 사무관을 15년이나 했다. 자리도 좋은 곳으로 가지 못했다. 의성세무서 등 시골 세무서를 전전했다.
1991년, 국세청에서 인사 설움을 겪던 김 지사에게 마침내 '대박 기회'가 왔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 민정비서실 행정관으로 가는 '행운'을 잡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1993년 초 김영삼정부가 들어오면서 그는 쫓겨나다시피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 임기가 다 끝난 전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에서 전임 대통령의 행운을 비는 건배사를 했다는 이유로 '미운털'이 박혔던 것이다.
'만년 사무관' 설움을 뒤로하고 천신만고 끝에 들어갔던 청와대. 하지만 청와대를 나온 그는 당연히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지방청장 자리도 얻지 못했다. 김관용 지사는 또다시 좌천을 맛봤다. 일선 세무서장으로 나와야 했다.
국세청에 있던 김 지사의 고시 동기들은 대다수가 지방청장을 했다. 다른 부처에 있었던 이해봉'심우영 씨 등은 장관까지 했다. 치매에 걸린 노모의 대소변까지 받아내는 악전고투 속에서 김 지사를 내조해온 아내. 아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만년 사무관' 김 지사는 한없이 미안했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랬지 뭐." 최근 만나 "왜 그렇게 승진 운이 없었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김 지사는 씩 웃으며 이렇게 한마디 했다.
숫자를 매일 보는 예산담당관실 직원들이 깜짝 놀랄 만큼 김 지사는 숫자에서만큼은 탁월한 업무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숫자를 보는 국세청에서 그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원칙을 자꾸 고집했더니 직장 상사들이 좋게 보지 않더라"고 했다. '만년 사무관' 김관용 지사에게는 윗사람 눈치를 살피는 재주가 없었다.
김 지사가 도백이 된 뒤 "도청 이전을 하겠다"고 했을 때였다. 도청 공무원들은 "지사가 눈치가 없어. 상황 판단을 못해"라며 수군거렸다. 이의근 전 지사도 못했던 도청 이전을 초선 지사가 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도청 이전에서 탈락한 지역의 반발을 불러와 도지사 재선은 불가능하다고 공무원들은 말풍선을 날려댔다.
도청 공무원들 예측처럼 도청 이전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전지에서 탈락된 지역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만 도청 이전 예정지 땅을 살 돈이 없었다. 전남도청이 중앙정부 지원을 통해 옮긴 만큼 중앙정부가 돈을 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중앙정부는 손사래를 쳤다. 제대로 된 개발을 할 수 없도록 도시계획으로 꽉 묶여 있는 대구 산격동 도청부지도 팔리지 않았다. 도청 이전 약속이 공염불이 될 위기에 놓였다.
김 지사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대구 북구 동호동에 있던 경북농업기술원 부지를 경북개발공사에 현물출자, 경북개발공사의 증자를 통해 금융권 자금 수혈을 성사시키면서 도청 이전 재원을 확보했다. 난항을 겪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재원 대책 마련은 불과 몇 달 만에 마무리됐다. "도청 이전? 그거 안 된다"던 도청 안팎의 목소리가 쑥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도청 이전은 분명히 내가 손해 볼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두가 뜯어말렸지. 도청 이전을 공약하고 도지사가 된 이의근 지사님까지 말렸어요. 그런데 약속을 깰 수 없었어. 고통스러운 길이었지만 근본을 무너뜨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단체장 6선이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운 김 지사가 새해 도정 화두로 '무본자강'(務本自强)을 내밀었다. 근본에 충실하면 스스로 강해진다는 뜻이다. 무본(務本)을 앞세웠던 '만년 사무관'은 모두가 은퇴할 나이에 6선 단체장이 되면서 자강(自强)을 이뤘다. 그의 인생역정처럼 을미년(乙未年) 경북의 자강(自强)도 현실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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