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31일.
매일신문 임직원들은 1946년 창간 이후 '아마도' 가장 바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이날 새벽에 출근해 2014년을 마무리하는 송년호를 제작한 기자들은 오후에 하나둘씩 다시 편집국으로 모여들었다. '지령 제21667호' 2015년 신년호 제작을 위해서였다.
매일신문이 올해부터 조간으로 바뀌면서 이날 신문은 두 차례 제작됐다. 31일 오후에 배달된 마지막 석간신문에 이어 새해 첫날 배달된 신년호 신문을 이날 저녁 만든 때문이다.
하루 동안 신문을 두 차례 제작한 편집국에는 온종일 긴장감과 설렘이 교차했다. 1962년 이후 53년간 석간신문을 유지해온 탓에 임직원 모두 조간신문 제작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창간 69년이라는 저력이 말해 주듯 석간신문처럼 새해 첫 조간신문은 별문제 없이 제작됐다.
기자들은 조간신문 제작을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두 달 동안 시험 제작을 해 왔다. 오전 정상적인 업무를 마친 뒤 야간 시간에 몇 차례 조간 시험 제작을 연습한 것. 하루 15만 부에 이르는 신문을 찍어내는 성서윤전제작국도 이날 비슷한 표정이었다. 이날 오전 편집국에서 마감된 신문 필름을 윤전기에 걸어 마지막 석간신문을 인쇄한 데 이어 밤 첫 조간신문을 인쇄했다. 새해 첫 조간신문을 찍은 성서윤전제작국에는 여창환 매일신문 사장과 임직원들이 찾아 매일신문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찍는 순간을 함께했다.
이날 자정 윤전기에서 나온 신문은 새해 첫날 대구경북 지역 내 214개 매일신문 지국으로 이송됐고 새벽 시간 독자들에게 전달됐다.
25년간 매일신문 지국을 운영해온 허만억 대구고산지국장은 "31일 오후 석간신문 배달을 마치고 잠깐 눈을 붙인 뒤 자정쯤 지국에 나와 1일 조간신문 배달을 했다"며 "첫 조간이라는 기대감에 피곤함도 잊었다"고 했다.
허 지국장은 "새벽에 신문 배달을 나서보니 '이른 아침 일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라는 것을 실감했다"며 "독자들이 조간 매일신문을 석간처럼 계속 사랑해 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조간신문을 만드는 것이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조간 전환 결정은 상당한 고심의 결과였다.
독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변하면서 조간신문을 선호하는 독자들이 늘어났고 좀 더 많은 정보를 담기 위해서는 조간 제작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50여 년간 석간 매일신문을 애독해온 독자들의 '오후 습관'을 외면하기도 쉽지 않았다. 독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와 수십여 차례의 조간 전환 회의, 그리고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새해 첫날 매일신문은 조간으로 바뀌었다. 31일 오전 6시에 불이 켜진 매일신문 편집국의 불이 꺼진 시각은 새해 첫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자정 무렵이었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