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시아 현대사진전' 2월 1일까지 대구미술관

정연두 작
정연두 작 'WONDERLAND'

사진예술에 대한 아시아 작가들의 고민과 현대사진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는 '아시아 현대사진전'이 2월 1일(일)까지 대구미술관 1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재현을 기반으로 한 사진의 전통적 기능이 점점 퇴색되어가는 시대, 현대사진의 정점에 위치한 작가를 통해 현대사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기 위해 기획된 이번 전시에는 개방 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 사회를 냉소적 시각으로 고발하는 왕칭송 작가와 사람들의 꿈을 작품 안에서 현실화하는 정연두 작가가 중국과 한국을 대표해 초대됐다.

두 작가는 주어진 풍경이나 인물을 있는 그대로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되어 장면이나 풍경을 연출한다. 또 사진과 설치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장르 간 개방성을 탐색하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사진의 기능으로는 복잡한 현대사회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작가적 고민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두 작가의 표현 방식이다. 왕칭송은 직설적인 반면 정연두는 은유적이다. 한마디로 왕칭송은 돌직구를 날리듯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이에 비해 정연두는 옷고름을 여미듯 자신의 의도를 살포시 감추고 있다. 그런 까닭에 왕칭송의 작품은 보는 사람들을 압도할 만큼 강렬하며 정연두 작품은 꿈을 꾸듯 아련하게 다가온다.

◆산업화의 병폐를 고발하는 왕칭송

왕칭송은 중국 1세대 사진작가로 중국 현대사진을 사회와 문화 풍자의 시각예술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는 화가가 되기 위해 1991년 쓰촨미술학원에 진학해 유화를 전공했지만 1996년 사진작가로 항로를 바꾸었다. 급변하는 중국 사회를 그림으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순간순간을 신속하게 담을 수 있는 사진에 주목하게 된 것. 이후 작가는 기록 사진에 머물러 있던 중국 사진계에 설치미술과 행위예술을 접목시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왕칭송은 자본주의와 서구문화의 유입이 초래한 중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냉철한 시선으로 고발한다. 자신을 기자로 부를 만큼 현실을 고발하려는 그의 작가 정신은 투철하다. 왕칭송은 자신이 경험한 모순적인 삶의 태도, 중국의 정치'경제적 문제 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많은 사람과 물자를 동원해 연극무대처럼 연출한 뒤 이를 카메라에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가 사진으로 제시한 장면은 철처한 계획 아래 설정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어 설득력을 갖고 있다.

이번 초대전에는 중국의 소비주의를 냉소적으로 표현한 2000년 이후 작품 등 16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회화 작품도 특별히 제작했다. 7m 높이의 대구미술관 어미홀 벽에 설치된 'Soriasis'는 한국어로 된 전단지를 보고 작가가 제작'설치한 작품이다. '남성'여성 골프웨어 90%' '호주'뉴질랜드 북섬 8일 2,870,000' 등 다양한 홍보 전단지를 통해 광고 홍수시대, 이익 추구에만 집중하는 현실과 그 속에서 소외되는 인간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왕칭송의 작품에는 날 선 풍자가 살아 있다. 그 풍자가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풍자를 통해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적 정서와 상통하는 측면도 한몫을 하고 있다. 중국의 치열한 입시 경쟁을 풍자한 작품은 우리나라의 과도한 사교육 열풍을 연상시킨다.

◆서민들의 꿈과 소망에 귀 기울이는 정연두

정연두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을 작품 안에서 실현시키는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정의하는 키워드는 경계다. 그는 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그의 작품은 꿈과 현실을 병치시키거나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드러내며 실재와 가상의 경계에서 상이한 두 세계의 연결지점을 만들어낸다.

또 그는 관찰자이자 연출자의 경계 선상에서 작업을 한다. 작가의 작업은 일관되게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된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은 사건의 목격자 또는 참여자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관찰 대상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동시에 주관적인 시점을 견지하는 이중의 효과를 가진다. 작가는 영상, 무대 장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자신이 느낀 감성과 의도를 사진에 주입한다. 하지만 작가의 개입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진다. 그의 작품에 현실과 작가가 재현한 비현실이 공존하는 이유다.

이번 전시에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 사는 32가구의 가족사진을 담은 '상록타워', 꿈과 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보여준 '로케이션', 사교댄스를 즐기는 중년 남녀의 모습을 담은 '보라매 댄스홀' 등 73점의 작품이 선보였다.

정연두는 2007년 최연소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에는 상하이비엔날레 아시아유럽문화상을 받았다.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스페인 마드리드 에스파시오 미니모갤러리, 독일 드레스덴 개브흐 리만갤러리, 중국 상하이 아트스페이스, 프랑스 파리 갤러리엠마뉴엘, 홍콩 사바나예술대학갤러리 등 세계 유수의 전시장에서 개인전도 가졌다.

김선희 대구미술관장은 "미술에 대한 흥미를 더욱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두 작가의 아이디어와 작품 전반에 녹아 있는 인간에 대한 관심,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초점을 맞춘다면 훨씬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053)790-3000. 이경달 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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