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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인간에게 고기 주는 존재가 아닙니다…『마을로 간 신부』

정홍규 신부
정홍규 신부

마을로 간 신부/정홍규 지음/학이사 펴냄

사람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간은 지구에 어떤 존재이며, 인간에게 지구는 또 어떤 존재인가. 동물에게 인간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생태평화운동을 전개해온 정홍규 신부가 지구와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생태평화의 세상을 염원하는 책 '마을로 간 신부'를 펴냈다.

책은 우리가 저지른 잘못, 당면한 문제를 이렇게 지적하며 시작한다. '우리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종자를 불임시켰고, 젖소를 우유 생산하는 기계로, 닭을 달걀 낳는 기계로, 소를 고기 생산하는 기계로 만들었다. 어머니인 지구 공동체의 신성한 실재들은 (인간에 의해) 소비할 천연자원으로 격하되었다. 하나의 종에 불과한 인간이 지구가 1억 년 동안 생산한 것들을 150년 안에 모두 소비해버리고, 그 속도는 매년 빨라지고 있다.'

지은이는 여기저기서 생태파괴에 대한 반성이 나오고 있지만 근본적인 반성이 아니고,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가령 우리나라에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것은 2000년이었다. 이후 구제역은 2002년, 2010년, 2011년에 쓰나미처럼 우리를 강타했다. 2010년에는 강원도 고성, 경남 김해시, 충남 예산, 경북 안동과 포항 등 5천216개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65일 동안 지속된 구제역 사태로 소와 돼지 300만 마리, 조류 40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10마리 중 2마리가 살처분된 것이다. 지은이는 '살처분은 인간 중심 쪽의 용어이고 동물 쪽에서 보면 대학살'이라고 지적한다.

'살처분 보상금을 확보하고 삼겹살, 소고기값 문제를 잡고 방역을 철저히 하는 것은 근본적인 구제역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문화의 쇄신 없이 구제역 해결은 요원하다. 지나치게 과한 육식, 폭력적인 식사에서 비폭력적인 식사로 바꾸어야 한다. 동물 착취를 통한 이윤만을 생각하는 인간의 탐욕이 구제역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책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은 누구이며, 동물에게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과 왜 구제역과 같은 오염된 상황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이런 현실 앞에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스도교는 동물 해방에 대해 신학적, 윤리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떼이야르 드 샤르뎅 신부와 토마스 베리 신부는 우주 만물이 하나의 동일한 원천에서 나왔다고 보았다. 이웃과 친척의 범위가 인간을 넘어서는 것이다. 성 프란체스코는 태양을 형제라 불렀고, 힐데가르트 수녀는 땅을 어머니라고 노래했다. 비인간과 인간, 살아 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을 분리하지 않았다"며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동물관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또 우리는 한없이 겸손해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140억 살 정도 된 우주의 역사를 500쪽짜리 책 30권 정도의 전집으로 묶을 경우 지구는 21권 즈음에야 등장하고, 인간은 마지막 30권째 498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등장한다. 이 장대한 우주 이야기는 인간이 주요 등장인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게다가 우주 이야기의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앞서 등장한 모든 것들로부터 신세를 지고 있고, 그들과 연관돼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다른 존재를 파괴할 권리가 없으며, 다른 존재들이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역할을 막을 권리도 없다는 것이다.

책은 '(인간은 우주에 늦게 등장했지만) 우리가 행하는 일이 우주 이야기에 더해지면 나머지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인간의 선택과 행위는 지구 상에 있는 다른 존재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더 책임감 있고 윤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압축하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구제역 발생으로 우리 동네 종돈장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농장의 소나 돼지가 과잉 도살 처분되었다. 살처분되기 전날 우리 동네 돼지들은 어떻게 낌새를 챘는지 밤새도록 울었다. 하느님의 모상을 본떠 만들었다는 인간만이 불멸의 영혼을 가졌고, 나머지 것은 다 열등하고 하등하다는 생각에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280쪽, 1만5천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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