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말한다. 정상에 오르면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언제까지 정상에 머무를 순 없는 노릇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정상에 오른 이가 꾸준히 그 자리를 지키는 케이스가 드물지만 종종 발견되기도 한다. 방송계에 그런 인물이 한 명 있다. '국민 MC' 타이틀을 좀처럼 내려놓지 않고 있는 이, 유재석이다. '더 오를 곳이 없다'며 내려갈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정상에서 텃밭을 가꾸며 품질 좋은 수확물까지 내놓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해 말, 각 방송사의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유재석은 또 한 번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했다. 대상 수상 결과를 대국민 문자투표로 실시한 MBC에서, 또 2005년 이후 9년간 대상 수상에 실패했던 KBS에서도 또 한차례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로써 유재석은 방송 3사를 돌아가며 연예대상 트로피를 10개나 챙긴 인물이 됐다. 지난해 제50회 백상예술대상에서도 방송부문 대상의 영예를 누렸으니, 소위 '공인된 시상식'의 대상만 11회를 휩쓴 셈이다.
▷위기론 극복하고 건재함 과시
사실 유재석에게 있어 2014년은 수월하지 않은 해였다. MBC '무한도전', 그리고 KBS 2TV '해피투게더' 등 9주년을 넘긴 장수 프로그램들은 '오래 됐다'는 이유 때문인지 답보 상태를 이어갔다. SBS '런닝맨'이 변함없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역시 오래전에 자리가 잡힌 프로그램이라 그 안에 있는 유재석의 존재감이 유별나게 도드라지지는 않았다. 프로그램의 인기에 유재석의 역할이 상당했지만, 이제 프로그램 안에서 유재석이 '잘하는 건' 그저 '당연한 일'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특히나 KBS와 손잡고 야심 차게 선보인 새 프로그램 '나는 남자다'가 5%대의 아쉬운 시청률에 예상보다 미적지근한 반응을 얻으면서 '유재석도 한계가 보인다'는 혹평이 나왔다. 차라리 신동엽처럼 지상파와 케이블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했다면 말이 달라졌을 것. 하지만, 매번 신중하게 프로그램을 고르고 또 홈런을 날렸던 유재석이라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유재석은 2014년 한 해 동안 주요 시상식의 대상을 가장 많이 휩쓴 방송인이 됐다. 그리고 그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도 없었다. 결국은 탁월한 진행능력과 이미지 관리, 그리고 매사 '최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 '최선'이란 단어는 방송계 지인들이 유재석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쓰는 말이다. 녹화 전 아이디어 회의에 직접 참여하고, 틈날 때마다 출연자들을 독려해 최상의 퀄리티를 만들어내기 위해 애쓰며, 녹화가 끝난 후 최종 방송 버전이 나오기 직전까지도 PD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완벽주의 때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마저도 유재석과의 작업은 쌍수를 들고 반긴다. 과정이 힘들 수는 있겠지만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가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보장률 높은 보험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유재석의 근성은 '무한도전'의 9년 역사를 되돌아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유재석이 '뭐든 잘하는' 모습만 보여준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포기하거나 주저앉지는 않았다. 스포츠 댄스에 도전하고 봅슬레이를 탈 때도, 프로 레슬링을 하고 뜬금없이 스키점프대를 기어오를 때도 그랬다. 완벽하게 체력 안배를 하고 밤잠 줄여가며 연습해 최상의 결과물을 보여줬다. 또 동료들을 다독거리며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유재석을 잘 아는 이들은 이런 말을 한다. 말재주를 타고난 사람인 건 틀림없지만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는 건 '노력'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유재석은 결국 '타고난 노력형 인재'다.
▷카메라 뒤에서도 관리 또 관리
유재석의 '노력'은 카메라 밖에서도 이어진다. 1990년대 후반 '서세원쇼'의 토크박스 코너를 통해 인기를 얻고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메인 MC가 됐으니, 유재석이 방송계의 '핫'한 인물로 지낸 게 대략 15년째. 그동안 유재석은 단 한 번도 '모범생'의 이미지를 놓친 적이 없다.
'건실한 청년'으로 불리던 유승준, '가정적인 남자'로 알려졌던 이혁재 등 비슷한 유형의 연예인들이 '실수'로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었던 예가 허다하다. 연예계에서 '방송 이미지'와 실상이 같은 인물을 찾아내는 것이 오히려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데 유재석은 다르다. 참 피곤하게도 카메라 뒤에서까지 자기관리에 철두철미해 그 흔한 구설 하나 없다.
필자가 만난 유재석도 그랬다. 제50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장에서 본 유재석은 무대 뒤 복도에서 마주치는 스태프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고 다니는 '참 피곤한 사람'이었다. 따라붙는 카메라나 기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방송에서처럼 예의 바른 모습을 유지했다. "참 힘들게 사신다"고 말을 붙이니, "아이고 그게 무슨 말씀이냐"며 두 팔을 내저었다. 화면 속에 보이는 유재석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하는 행동이다.
한번은 필자가 관여하던 시상식의 큰 상이 유재석에게 돌아가게 돼 직접 섭외에 나선 적이 있다. 시상식 당일 유재석이 출연 중인 프로그램 녹화 스케줄이 겹칠까 봐 해당 프로그램 PD를 직접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그 PD는 "마침 녹화 스케줄이 여유가 있다"며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유재석에게는 나를 만났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유재석의 성격상 제작진이 본인의 시상식 행을 배려해 녹화일정을 조정했다고 하면 크게 화를 낼 수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자신의 개인스케줄 때문에 제작진과 타 출연진에게 피해를 입히는 건 유재석에게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 아직 무명생활을 하고 있는 개그맨 오지환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현직 개그맨으로서 '인간 유재석'의 실체를 폭로한다'는 글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처음 본' 유재석으로부터 인간적인 격려를 받았던 일, 또 한 장례식장에서 자신의 사진을 찍는 상조회사 직원에게 "고인과 유가족에게 실례가 되니 지워달라. 밖에 나가서 제대로 찍어주겠다"고 정중하게 부탁하던 유재석을 지켜봤던 일화 등을 써서 올린 글이었다. 오지환은 "이 글이 널리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인간 유재석'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으면 한다"고 글의 말미에 강조했다. 유재석의 인간성을 잘 알 수 있는 글로 화제가 됐다.
데뷔 당시부터 유재석을 지켜봤던 한 방송인은 "그 친구, 속으로는 많이 힘들 것"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흥이 넘치는 사람이 끊임없이 주위를 의식하며 산다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설명이다. "그 인생 부럽지 않다"고 하면서도 '그 노력'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참 피곤하게 사는 사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참' 뚜렷하다.
◇유재석 프로필
출생 : 1972년 8월 14일 서울생
신체 : 178㎝, 65㎏
가족 : 배우자 나경은
학력 : 서울예술대학교 방송연예학과 중퇴
데뷔 : 1991년 제1회 KBS 대학개그제
주요 프로그램 : '무한도전' '나는 남자다' '런닝맨' '패밀리가 떴다' '해피투게더' 'X맨' '느낌표' '놀러와' 등 다수
수상경력 : 제1회 KBS 대학개그제 장려상(1991) KBS 연예대상 TV진행부문 최우수상(2003) MBC 방송연예대상 쇼버라이어티부문 최우수상(2003) SBS방송연예대상 대상(2008) 등 지상파 3사 연예대상 10회 수상 및 한국PD대상 및 모바일연예대상 등 다수 시상식에서도 주요부문 수상.
정달해(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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