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맛에서 시작한 조청'.
'조청'은 선조들이 음식의 단맛을 살리기 위해 사용한 재료이다. 집집마다 아궁이에 불을 때 만들었던 조청이 지금은 대기업의 대량생산 방식으로 바뀌면서 '전통방식'의 조청 제조공장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경북 경산에 자리한 경일식품은 30여 년간 전통 조청 하나만 전문적으로 생산해온 업체다. 이 업체는 2대에 걸쳐 전통식품 사업을 이어가는 장인기업이다.
◆전통방식 고집, 위기 속 성장
경일식품 김규섭 대표는 어릴 적부터 집에서 어머니가 조청 만드는 것을 지켜봤다. 경북 안동에서 정미소를 운영했던 선친의 일을 도왔던 김 대표는 성인이 된 뒤 정미소 일을 접었다. 김 대표는 "시대가 변하면서 정미소를 이어가기 어려웠다. 문을 닫고 '곡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어머니의 조청 맛을 기억하고 있던 김 대표는 '전통방식으로 조청을 만들어 내다 팔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동네 엿공장에서 일을 배웠고 그때의 노하우와 어머니 손맛의 비결이 결합해 1980년 9월 경산에 경일식품을 개업했다.
경일식품 관계자는 "초창기에는 큰 가마솥에다 조청을 만들어 팔았다"며 "일일이 수작업을 했다"고 했다. 조그마한 공장으로 시작, 주변에 판매하던 조청은 처음 판매량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전통시장에서 경일식품의 조청이 '맛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옛날 조청처럼 감칠맛이 난다고 평을 했던 것이 효과가 컸다"며 "전통방식을 고수한 덕분"이라고 했다.
1980년대 마을마다 엿 공장이 있을 정도로 활황이었던 때 후발주자로 시작한 경일식품이지만 전통방식이라는 그나름의 '고집'이 호응을 얻었다.
조금씩 성장을 해오다 위기도 맞았다. 1998년 자인지방산업단지로 확장 이전하자마자 외환위기(IMF)가 닥친 것. 김 대표의 아들인 김기홍 과장은 "엿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투자한 이후 외환위기가 닥쳐서 너도나도 허리띠를 졸라맸다"고 말했다. 사장이었지만 김 대표도 생산현장에 남아 직접 배달을 했다. 이때 몸에 밴 습관은 50대가 넘어설 때까지 현장에서 뛰도록 만들었다.
엿 공장이 문을 닫을 시기에도 품질을 유지하면서 버틴 덕분에 마침내 경일식품은 전국적으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이 됐다. 김 대표는 "우리 제품이 블라인드테스트에서 가장 맛있다는 평이 나오는 등 사람들의 입맛을 잡는 기회들이 속속 생겨났다"며 "순창에서 고추장을 만드는 데 우리 제품을 쓰는 등 대량 구매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고급화 조청 '예청'
조청은 김장이나 고추장, 음식 양념과 조림 반찬뿐 아니라 떡이나 전통한과 등에 다양하게 쓰이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전통 식재료다. 경일식품은 생엿기름을 이용한 전통제조방식으로 어머니 손맛을 그대로 이어왔다. 이 덕분에 경일식품은 2013년 매출 23억8천800만원을 기록하며 국내 엿류 매출에서 5위에 이름을 올렸다. CJ제일제당, 삼양제넥스 등 대기업 사이에서 당당히 상위를 차지한 것.
김 과장은 "전국을 통틀어 대기업에서 대량생산 공법과 정제를 거친 값싼 흰 물엿으로 인해 설 자리가 없어져 조청의 명맥을 제대로 이어가는 곳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며 "하지만 우리는 전통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소비자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일식품 관계자는 "우리 조청은 전통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곡류의 다양한 영양 성분이 녹아 있고, 발효와 유사한 당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건강에 더없이 좋은 감미료다"며 "게다가 대기업 제품에 비해 품질은 나으면서 가격이 저렴하다"고 말했다.
경일식품은 2009년 12월 찹쌀 조청을 만들어 '자연빛깔' 브랜드를 출시, 전통식품의 대중화에도 앞장섰다.
최근 회사는 전통의 맛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김 대표의 아들인 김기홍 과장이 실무를 맡고 있다. 김 과장은 전통방식으로도 현대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고급화'한 제품을 연구개발했다. 그는 "조청의 주된 원료인 곡물에 쌀을 사용하면 쌀 조청, 옥수수를 사용하면 옥수수 조청이 된다"며 "우리는 생강과 도라지, 대추 등 전통 식재료를 혼합하는 등 맛과 향을 새롭게 변형한 조청을 내놨다"고 말했다.
'예청'이라고 브랜드 이름을 붙인 이 제품은 2014 쌀가공품 품평회 TOP10에 선정,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받았다.
김 과장은 "일부 몰지각한 업체들이 흰 물엿에 캐러멜 색소를 첨가해 만든 '저질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등 시장을 흐리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 경일식품은 전통을 살리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철학을 끝까지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경석 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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