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 아이 순풍순풍, 나라와 함께 키우자] <1>산모들의 든든한 지원군

부르면 달려갑니다 '버스 산부인과'

2013년 기준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1.19명. 우리나라의 팍팍한 육아 현실을 숫자가 증명한다. 지금은 나라와 함께 아이를 키워야 하는 시대다. 출산과 보육을 나라가 책임지지 않으면 출산율은 지금보다 더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출산의 시작점은 산부인과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곳이 있어야 출산율도 오른다. 하지만 농어촌 지역에는 분만실은커녕 진료를 받을 산부인과가 없는 곳이 많다. 경북 23개 시군 중 8개 군에 산부인과가 없지만 이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이동식 산부인과가 산모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산부인과 없나요? 우리가 찾아갑니다!

지난달 성주군 성주보건소. 보건소 뒷마당에 대형 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초음파 진단기 등 의료 장비가 설치된 이 버스는 경북도청이 운영하는 '찾아가는 산부인과'다. 2009년 가을부터 안동의료원에 위탁해 운영하는 사업으로 산부인과가 없는 8개 군(군위, 의성, 영양, 영덕, 청도, 고령, 성주, 봉화)를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하고 있다. 최대 인원은 하루에 30명 정도로 이날 산모 29명이 진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생김새만 보고 버스 병원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산부인과 전문의, 방사선사와 임상병리사, 운전기사 각 한 명과 간호사 두 명이 한 팀을 이뤄 8개 군을 누빈다. 안동의료원 찾아가는 산부인과 유봉재 진료과장(산부인과 전문의)은 2011년부터 8개 지역 산모들을 전담해온 베테랑이다.

산모의 동의를 얻어 진료실에 함께 들어갔다. 버스 안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커튼이 쳐진 맨 안쪽 침대에 산모가 누워 초음파 검사를 받고 있었다. "이게 아기 허벅지, 여기는 항문이에요. 화면에 보이는 검은색은 액체가 오줌이에요. 체중도 볼까요? 662g이네요." 찾아가는 산부인과가 서른 명을 하루 적정 진료 인원으로 보는 것은 산모 한 명당 진료 시간을 약 15분 정도로 책정해 꼼꼼하게 진료하기 위해서다. 유 과장은 "버스 병원이라는 생김새 때문인지 처음에는 산모들의 기대치가 낮다. 하지만 진료비가 무료고, 다른 병원보다 진료 시간도 긴 편이어서 한 번 진료를 받은 산모들은 90% 이상 다음 달에 진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대기 시간이 짧은 것도 장점이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돼 산모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본인의 진료 시간에 맞춰 보건소에 온다. 이런 장점 덕분에 찾아가는 산부인과를 이용하는 성주 지역 산모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성주보건소 모자보건 담당 도예나 씨는 "성주군은 대구 달성군, 달서구와 차로 30~40분 거리에 있어 대구 지역 병원을 이용하는 산모들이 많다. 최근에는 산모들 사이에서 무료 병원비와 꼼꼼한 진료로 입소문이 나서 적정 예약 인원을 꽉 채운다"고 말했다.

산모들의 만족도도 높다.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인 신수경(28) 씨는 2012년에는 찾아가는 산부인과와 도시 대형 병원을 동시에 이용했다. 신 씨는 "성주에 처음 이사 왔을 때 산부인과가 없어서 고민이 많았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차로 직접 운전해 구미까지 갔는데 배가 불러서 너무 힘들었다"며 "보건소에서 임부 등록을 하며 이 사업을 알게 됐는데 진료 대기 시간도 5~10분으로 짧고, 초음파 검사를 받을 때도 상세히 설명해줘 먼 도시 큰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진료를 기다리며 친구도 사귀었다"며 웃었다. 이날 처음 찾아가는 산부인과를 이용한 전지현(31) 씨도 "오늘 의사 선생님이 설명해 주셔서 초음파 영상에서 체중 확인하는 법을 처음 알았다"고 만족해했다.

◆떨어지는 출산율, 사라지는 산부인과

이동식 산부인과가 찾아가는 지역 8곳의 출생아 수는 그리 많지 않다. 2013년 기준으로 군위는 99명, 청도 162명 등 한 해에 출생아 수 200명에 못 미치는 지역도 있다. 하지만 경북도는 그해 국비 지원 없이 도비 4억3천만원을 이 사업에 투입했다. 경북도청 보건정책과 이원경 과장은 "출생아 수가 적은 지역에 사는 임산부들도 다른 지역과 비슷한 수준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산모들의 반응도 좋아서 앞으로도 이 사업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19명으로 전년(1.297명)보다 감소했다.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합계출산율이 1.5명 미만인 1.448명으로 떨어졌고 2005년 1.076명으로 바닥을 찍었다. 2001년 1.297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초 저출산국(1.3명 이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북 지역도 지난 10년간 출생아 수가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2003년 23만3천372명이었던 출생아 수는 2007년 24만947명으로 상승세를 탔으나, 2013년 22만206명으로 다시 내려앉았다.

출산율이 떨어지자 문 닫는 산부인과도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통계에 따르면 2009년 1분기 73곳이었던 경북 지역 산부인과 의원이 2014년 1분기에는 57곳으로 16개가 폐업했다. 같은 기간 대구도 100곳이었던 산부인과가 85곳으로 15개가 문을 닫았다. 현재 경북의 분만 취약지는 군위와 의성, 청송, 영양, 영덕, 청도, 봉화, 울릉 등 8곳으로 아기를 낳으려면 분만 시설이 갖춰진 병원으로 1시간 이상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2011년부터 '분만의료취약지 지원사업'을 운영 중이다. 이는 분만 취약지 중 매해 분만 건수가 250건 이상이고 분만 산부인과 운영이 가능한 곳에 시설 설치비와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고, 250건 미만인 곳은 외래 산부인과 운영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14개소가 추가로 선정했고, 현재 전국 25개 산부인과가 혜택을 받고 있다. 경북도 예천과 울진, 영주에 분만 산부인과가 생겨나 '분만 오지'에서 벗어났다.

고민도 있다. 정부가 소수 산모를 위해 예산을 투입해 분만 시설을 만들었지만 인근 도시 대형 병원으로 향하는 산모들이 많아서다. 보건복지부 공공정책과 관계자는 "이 사업을 시행한 뒤 지역 내 분만율이 0이었던 곳의 분만율이 30~40% 이상 뛰는 등 분명 효과도 있다. 하지만 농어촌 지역에 사는 산모들이라고 해서 모두 지역 산부인과에서 출산하는 게 아니라서 사업비를 지원한 분만 산부인과에 분만율이 낮다고 성과와 실적만 따질 수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분만 취약지: 지역 내 분만율(해당 지역 산모가 지역 내 산부인과 등에서 분만하는 비율)이 30% 이하며,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로부터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지역을 뜻한다. 경북의 분만 취약지는 군위와 의성, 청송, 영양, 영덕, 청도, 봉화, 울릉 등 8곳이다.

※합계출산율: 15~49세 사이의 가임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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