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양털 깎기' 화폐 전쟁

양의 해가 밝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양은 BC 8천~6천 년경 서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가축화됐다. 그런 이유로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양이다. 한 자료에 따르면 양과 관련한 단어는 신약성서에 74번, 구약성서에 497번이나 등장한다.

양은 온순함과 우직함의 대명사다. 한자 '아름다울 미(美)'를 풀어보면 '양(羊)은 크다(大)'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착함, 옳음, 상서로움을 뜻하는 한자 善(선), 義(의), 상(祥)에도 양(羊) 글자가 들어가 있다. 양은 또한 희생의 상징이다. 희생양, 속죄양이란 말도 여기서 생겨났다.

그러나 살벌한 경쟁시대에 양의 속성이 긍정적으로만 비치지는 않는 것 같다. 경제 분야에서 등장하는 용어 '양'이 그 예다. 2006년 중국의 경제역사가 쑹홍빙(宋鴻兵)은 저서 '화폐 전쟁'을 통해 국제금융재벌들의 수탈 행위를 '양털 깎기'에 비유해 화끈한 논쟁을 불렀다. 그에 따르면 양털 깎기는 다음과 같이 이뤄진다.

먼저 금리 인하, 양적 완화를 통해 시장에 돈을 푼다. 금리가 내려가면서 너도나도 부동산'주식 시장에 뛰어든다. 금융회사들도 앞다퉈 대출 세일을 한다. 거품이 일기 시작하고 투기가 막바지에 이르러 거품이 최대화되면 이번에는 금리를 올려 돈줄을 죄기 시작한다. 계속된 이자 상승에 견디지 못한 투자자들이 부동산'주식을 내다 팔기 시작하면 이는 곧 자산 시장의 연쇄 폭락으로 이어진다. 폭락한 자산들을 국제금융재벌들은 헐값에 쓸어 담는다.

쑹은 1929년 미국의 대공황, 1997년 IMF 외환위기, 2003년 국제금융위기 등을 양털 깎기 사례라고 보았다. 양털 깎기론은 경제계 안팎에서 회자하는 대표적 음모론 중의 하나다. 쑹의 주장대로 양털 깎기가 자행되었으며 배후에 국제금융재벌들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금리가 바닥까지 내렸다가 천장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양털 깎기와 유사한 현상들이 나타났다는 정황은 있다.

새해 들어서도 경제는 여전히 어렵고 전망도 불투명하다. 미국의 금리 인상도 시행 시기가 문제일 뿐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가계 및 공공 부문 부채가 위험수위에 도달해 금리 인상에 아주 취약하다는 점이다. 통상 미국보다 금리가 2% 정도는 높아야 우리나라의 외환시장에 충격이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금은 미국의 금리 인상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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