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한텐 제가 아빠이자 엄마죠. 그런데 살뜰하게 챙겨주지 못하고 아픈 것도 늦게 알아서 미안해요."
16살인 정민기(가명) 군과 형 정민수(가명'22) 씨가 지금까지 먹어본 가장 맛있는 음식은 '군만두'다. 얼마 전 다리가 아픈 민기를 데리고 병원에 가던 길에 민기의 학교 선생님이 사준 군만두. 둘만 살면서 변변한 반찬 하나 밥상에 올리지 못하는 형제에게 군만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병원으로 향하던 형제는 군만두가 먹고 싶어 시장 쪽을 바라본다. 형은 빈 주머니를 뒤적이다 동생을 부축해 병원으로 향한다.
"동생은 한창 클 나이인데 학교에서 먹는 급식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밥을 먹질 못해서 너무 미안해요. 부모님이 계셨다면 다리도 이렇게 아플 때까지 방치하진 않았을 텐데…."
◆의지할 곳은 둘뿐인 형제
민수 씨 형제는 부모님 얼굴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민수 씨가 갓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동생이 3살이었을 무렵,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곧이어 어머니는 큰아버지에게 두 아들을 맡긴 채 떠나버렸다. 민수 씨는 어머니의 소식을 듣지 전혀 못했다.
"살아계시다는 사실만 알 뿐 사는 곳이나 연락처를 알지 못해서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몰라요. 그래도 어머닌데…."
화물차 운전을 하는 큰아버지는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초등학생인 민수 씨는 이때부터 자신이 동생의 엄마이자 아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민수 씨는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다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바쁜 큰아버지는 민수 씨를 전학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어렸던 민수 씨는 그렇게 학업을 중단했다. 민수 씨가 17살이 되던 해 두 사람은 큰아버지와 떨어져 오롯이 둘만 살게 됐다.
"그때까지 한 집에서 키워주신 것도 너무 감사하죠.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살 집을 구해주시고 자주는 아니지만 들여다봐 주셔서 큰아버지가 저희에겐 아버지나 마찬가지예요."
어린 형제가 둘만 지내면서 가장 큰 문제는 먹거리였다. 음식을 만들어줄 사람도 없고 사다 먹으려고 해도 식비 부담 때문에 밥상은 항상 얻어 온 반찬과 밥뿐이었다. 그마저도 형 민수 씨는 동생을 더 먹이느라 배부르게 먹어본 지가 언젠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밥을 제대로 챙겨 먹는 게 살면서 제일 불편한 일이죠. 또래 아이들처럼 옷이나 신발을 맘껏 사지는 못해도 소박하게 살면 둘이서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침도 못 먹고 학교 가는 동생을 보면 미안함뿐이었죠."
◆다리가 휘어진 동생과 수술비 걱정인 형
다행히도 동생 민기는 착하고 바른 아이로 자랐다. 학교에서 민기는 형을 부모님처럼 따르면서 예의 바르고, 누구보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알려져 있다. 그런 민기의 다리가 아프다는 사실을 형은 까맣게 몰랐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민기는 형에게 학교 가는 길이 너무 힘들고 다리가 아프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형은 그저 학교 가기 싫어하는 투정이라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얼마 전 민기의 다리와 골반이 심하게 휘어 수술을 하지 않으면 다리를 쓰기 어려운 상태라는 진단을 받고 형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7, 8살 때부터 다리가 틀어지기 시작했다는데 형인 제가 너무 무관심했던 거죠. 다리가 어느 정도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크면서 괜찮아질 줄 알았어요."
민기는 휘어진 다리 때문에 걸어서 15분이면 가는 등굣길을 30분이나 걸려서 가야 했다. 친구들이 뛰어노는 체육시간에도 민기는 홀로 운동장 한구석에 앉아있어야만 했다. 형은 그런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만 민기의 보호자로서 마냥 울 수만은 없다. 민기를 데리고 병원도 다녀야 하고 수술을 하게 되면 비용 생각도 해야 한다. 의료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겨우 몇십만원으로 생활비를 해결하고 있는 형제에게는 병원을 왔다갔다하는 차비조차 부담스럽다.
게다가 형 민수 씨는 지난해 여름 팔을 다쳐 무거운 물건을 들지 못하는 상태. 넉넉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도 팔을 다친 뒤에는 아르바이트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더 큰 걱정은 민기의 다리는 한 번의 수술로 완치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형은 앞날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형은 최근 운전면허를 따려고 준비하고 있다. 큰아버지를 도와 화물차 운전을 해볼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생과 지낼 생활비도 벌고 수술비도 모아야 한다. 다리가 아픈데도 환하게 웃으며 크면 꼭 선생님이 되겠다는 동생을 보고 민수 씨는 힘을 낸다.
"사람들이 종종 아직 어린 데 꿈은 없느냐고 물어봐요. 동생이 잘 자라고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이 되는 게 곧 제 꿈이에요."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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