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놀자 즐기자] 겨울 스포츠 뭐가 있을까

차가운 빙판 가르는 뜨거운 외국인들

외국인들이 주축을 이룬 아이스하키팀
외국인들이 주축을 이룬 아이스하키팀 '아이스 라이온스' 회원들이 4일 밤 대구빙상장에서 훈련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이상헌 기자

일요일 오후 9시 30분은 대부분의 사람이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하며 쉬는 시간이다. 종일 북적이던 도심도 인파가 썰물처럼 빠지면서 한적해진다. 하지만 이 시각, '아이스 라이온스' 회원들은 엔도르핀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대구빙상장에 모여 호쾌하게 퍽(puck)을 날릴 순간이다.

아이스하키 동호회의 심야 훈련이 혹시 비인기 종목의 설움 탓은 아니냐고 물었더니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주장을 맡은 김성우(32) 씨는 "급정지와 급회전이 잦은 종목 특성상 아이스하키를 하면 빙질이 나빠져 어쩔 수 없다"며 "벌써 4년째라 회원들도 일요일 밤 외출이 익숙하다"고 귀띔했다.

'아이스 라이온스'는 특히 외국인들이 주축을 이뤄 눈길을 끈다. 전체 회원 29명 가운데 20명이 캐나다와 미국 국적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캐나다 여성 회원도 있었지만 고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현재는 20~30대 남성으로 구성돼 있다. 아이스하키가 큰 인기를 끄는 국가 출신인 만큼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캐나다가 이 종목 우승을 차지했을 때는 회원들이 함께 밤을 새우며 기쁨을 나눴다.

부주장 겸 수비수인 제이미 맥클레인(37)과 윙 공격수인 존 비튼(36) 역시 캐나다인이다. 각각 계명대와 경일대에서 강의하는 두 사람은 10여 년 전 대구에 정착했다. 고향이 캐나다 남동부의 노바스코샤(Nova Scotia)이고,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는 한목소리로 동향 출신인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최고의 슈퍼스타, 시드니 크로스비(피츠버그 펭귄스)를 꼽았다.

제이미는 "아이스하키가 비인기 종목인 한국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얼음을 지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다른 클럽들과 종종 시합을 하지만 결과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 "인구 6만 명인 고향에는 아이스하키 링크가 5개나 있다"며 "한국의 아이스하키 저변이 확대되려면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존 역시 "캐나다 출신의 마이클 스위프트'브라이언 영이 한국 국적을 취득해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에 발탁된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이스하키는 먼 이국 땅에 와있는 외국인들 사이에 우정의 가교 역할도 한다. 현역 미군인 에릭 베르하인(30) 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우연히 '아이스 라이온스'를 알게 돼 지난해 3월 가입했다. 미국 중부 세인트루이스 출신으로 한국 근무가 두 번째라는 그는 "행복하고 재미있는 삶을 위해 아이스하키를 배우고 있다"며 "회원들과의 삼겹살'막창 파티가 기다려진다"고 했다.

'아이스 라이온스'의 시작에는 대구 영신고'광운대에서 선수로 활약했던 김성우 씨의 공이 컸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2011년, 지역에는 동호회가 없어 대구의 외국인 아이스하키 마니아들이 울산'창원'김해에 가서 훈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계기였다. 김 씨는 한국 아이스하키리그 득점왕 출신인 한승웅(31'전 강원 하이원 센터포워드) 등 선수 출신 후배들까지 합류시켰고, 어느새 대구를 대표하는 동호회로 성장시켰다.

김 씨는 "외국인 회원 대부분이 학창 시절 아이스하키 클럽 출신들이라 실력이 뛰어나다"며 "지난해 타 지역팀을 상대로 4전 4승을 거뒀고 중'고교 팀의 훈련 파트너로도 뛰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씨는 "아이스하키가 '귀족 스포츠'로 오해받고 있지만 초보자용 용품은 100만원 수준, 회비는 월 3만원에 불과하다"며 "보호장구를 갖추고 하는 운동인 만큼 어린이들이 해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상헌 기자 davai@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