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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포통장 판치는 아파트 분양시장, 그간 당국은 뭐 했나

아파트 분양권 매매 차익을 노린 외지 자본이 지역 실수요자의 당첨 기회를 막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지난해 지역 아파트 청약 열기가 고조되고 '떴다방'이 마구 설쳐대면서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청약 가점이 높은 수도권 등의 외지 통장을 동원해 지역 신규 분양 아파트에 무더기로 당첨된 후 웃돈을 받고 되파는 불법 행위가 활개를 치는데도 전혀 단속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역민의 분노와 허탈감이 크다.

실제 거주 목적이 아닌 매매 차익을 노리고 외지인의 청약통장을 불법으로 사들이거나 동원하는 소위 '대포통장'은 법으로 엄연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매일신문이 5일 발표된 대구역유림노르웨이숲 청약 당첨 결과를 조사해보니 전화번호 뒷자리가 같아 동일 인물로 보이는 당첨자가 인기가 높은 특정 평형에서 무려 10채를 동시에 분양받았다. 이도 모자라 다른 아파트 단지 청약에서도 3채를 거머쥐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외지 큰손들과 부동산 업자들의 이런 불법 행위는 법을 우습게 여기고 내 집 마련이 급한 실수요자들을 대놓고 우롱하는 짓이다.

수요가 높은 단지나 인기 평형의 경우 청약경쟁률이 수백대 1을 훌쩍 넘어서는 등 당첨 확률이 바늘구멍보다 더 작은데도 동일인이 무려 13채나 차지했다는 것은 결코 대박도 우연도 아니다. 청약 점수가 높아 당첨 확률이 높은 타지역의 청약통장을 불법으로 동원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행 부동산 관련 법에는 분양권 불법 거래 시 3년 이하 또는 3천만원 이하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분양권이 공공연히 불법 거래되고 있다는 것은 당국의 무신경과 무능함을 여지없이 증명하는 꼴이다.

사법당국과 국세청은 당장 지역 아파트 청약 당첨 결과를 전수조사해 불법 투기세력을 모두 가려내야 한다. 대포통장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주민등록 이전 등 허술한 청약 자격 규정도 시급히 고쳐야 한다. 외지 투기꾼이 지역 분양시장을 쥐락펴락하는데도 그냥 방치하고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지역 실수요자들만 계속 '웃돈 폭탄'의 피해자로 만드는 일은 다시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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