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영화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 배우 유지태

"진학 위해 성악 잠깐 배운 적 있고 영어도 공부"

]3년 전쯤 한 지인으로부터 "영화 '기적'이 투자를 받지 못해 엎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갑상샘암으로 목소리를 잃은 오페라 가수가 다시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실화를 담은 영화였다고 들었는데, 안타까웠다.

성악가 배재철의 실제 이야기를 각색한다는 작품이었고, 배우 유지태가 천재 성악가에 캐스팅된 상태였다. 연기 잘하는 유지태가 어떻게 그 인물을 표현할지 궁금증이 컸기 때문이었는지 더 아쉬웠다.

제작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잠시 제작이 지연됐을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현장에 있는 이들은 '엎어졌다'는 말을 무척 싫어한다. 기사화되면 될 일도 안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기적'은 1년쯤 지나 촬영을 시작했고,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이하 더 테너)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결국 약 5년 만에 관객을 만나게 됐다. '리리코 스핀토'는 관객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있는 음색으로 최고의 테너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우여곡절이었던 '더 테너'는 개봉한 것만도 기적이다. 유지태는 "개봉하기까지 고생을 많이 했지만, 영화 촬영이 중단됐던 1년 동안 연습을 열심히 했다"고 위안 삼았다. 독립영화를 만들며 투자와 캐스팅 등에 또 다른 어려움을 겪어봐서인지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 지었다. 그나마도 다행이라는 투였다. 좀 더 성악 연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진학을 위해 성악을 잠깐 배운 적이 있다"는 그는 "어색함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발성부터 발음, 호흡을 다시 차근차근 배웠다. 배재철 선생님이 카리스마 있게 소리 내는 방식과 고유의 쉼표까지 잘 맞추도록 싱크를 따라갔다"고 회상했다. "음악영화를 보다가 티가 많이 나 거슬렸던 부분이 꽤 있었거든요. 비록 제 목소리는 아니지만 배우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는 꼭 잘 해내고 싶었어요."

물론 유지태가 밝혔듯 영화에 등장하는 무대 위 노래 부르는 목소리는 그의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유지태는 연기로 부족한 부분을 커버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강조했다.

유지태는 "배재철 선생님과 나는 음역부터 달라서 내가 이 노래를 부를 수 없다. 테너들도 쉽게 못 부르는 곡"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유지태는 푸치니의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들고',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에서 경쾌하고 웅장하게 펼쳐지는 집시들의 노래 '대장간의 합창' 등 7곡의 노래를 이탈리아어로 외우고 발성, 호흡, 표정 등의 연습에 몰두했다. 다른 작품 출연 제의까지 고사하며 하루 4시간씩 1년을 투자했다. 결과는 그리 어색하지 않다.

이번 작품을 위해 그는 영어도 공부해야 했다. 영화에서는 한국말보다 외국어를 하는 유지태의 모습이 많다.

"성악 연기도 잘하려고 했고, 영어도 일정 수준을 넘어야 한다는 생각과 도전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제작되는 영화 중 '외국말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냐?'라는 생각을 한 작품도 몇 있거든요. 그런데 그 영화들이 내수용만은 아니잖아요. 외국 사람들이 봤을 때 웃으면 안 되니, 그게 싫어서 열심히 했죠."

앞서 유지태의 아내 김효진이 일본과 합작한 영화 '무명인'에 출연하며, 배워본 적 없던 일본어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해 현지 스태프와 감독의 칭찬을 받았던 게 오버랩됐다. 열심히 노력하는 배우 부부라고 하니 유지태는 웃었다.

"서로 자극을 주거든요. '너 그거밖에 못 하니? 나라면 일주일이면 하겠다'고 했었죠. 진짜 효진이는 일주일 만에 공부하고 연습해 다 했어요. 저도 열심히 해야 했죠. 하하하."

유지태는 김효진의 이야기가 나오니 기분이 좋은지 아내 칭찬을 이어갔다. "아내가 내가 연기와 영화를 좋아하고, 예술도 좋아하는 것을 인정해 줘요. 내 꿈을 인정하고 알아주고 잘 참아주죠. 다만 제가 아쉬운 건 촬영할 때 아이를 못 보는 것 정도예요."

유지태는 자기 생각을 예술론으로, 독립영화를 향한 애정으로 발전시켰다. 2012년 영화 '마이 라띠마'로 장편 연출 데뷔해 프랑스 도빌 아시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는 등 호평받은 그는 차기작으로 탈북 여성과 조선족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담으려는 구상을 이미 끝냈다. 연기와 연출에 대한 욕심이 끝이 없다.

"제가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게 없다는 거예요. 표현도 다양하잖아요. 특히 독립영화는 좀 더 재미있고 유연한 것 같아요. 요즘은 단편에서도 상업영화를 의식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게 아쉬워요.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는데 독립영화를 상업영화 발판으로 생각하고 만드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계속 만들면 좋은 감독이 탄생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생각은 드네요."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되겠지만 만약 '더 테너'에서처럼 병에 걸려 연기를 못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어떨까.

유지태는 "아마 삶의 희망을 잃을 것 같다. 영화나 연기, 가정을 통해 내 존재를 유지하는 게 내 꿈이라면 꿈"이라며 상상하기 힘들어했다. 카메라 앞이나 뒤에 서지 못하는 유지태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그의 팬들에게도 끔찍한 일일 것만 같다. 다행히 그는 좋은 연기를 펼치고 있다. '더 테너'는 스코어가 낮아 상영관 수가 적어지고는 있지만, 유지태는 KBS 2TV 월화드라마 '힐러'로 시청자들을 찾고 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사진 나무엑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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