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낡은 공장 좀 보십시오. 새로 짓고 싶어도 지구단위계획 때문에 아무것도 못합니다."
7일 오후 대구 북구 산격동 정의금속. 각종 톱을 생산하는 이곳은 최신 자동생산설비를 앞세워 해외에도 수출할 정도로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공장은 허름하기 짝이 없다.
공장 입구로 내려가는 길은 좁고 경사가 심해 주차도 어려웠다. 외부에는 수많은 부자재가 널브러져 있고 2층의 낡은 벽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환풍기는 열악한 공장 환경을 그대로 보여줬다.
백의수 대표는 수년 전 현 공장 부지에 3층으로 된 최신식 건물을 짓고 내부를 정리하는 등 수출에 힘을 쏟으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2010년 대구시의 '산격지구 제1종 지구단위계획'으로 인해 증축을 할 수 없게 된 것.
백 대표는 "해외 바이어와 대형 오더 계약을 하려고 했으나 현장에 와 본 바이어로부터 환경이 나빠 보인다고 계속 퇴짜를 맞았다"며 "이곳을 팔고 좋은 곳으로 가고 싶어도 증축을 할 수 없어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업체들이 이곳에 한둘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계획시행 지지부진, 부작용도 많아
대구시는 북구 산격지구를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했지만 수년째 개발이 진행되지 않자 지구단위계획을 폐지하고 이전처럼 준공업지역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산격지구 내 제조업체 상당수가 수년째 공장 증'개축이 불가능해 문을 닫거나 매출 부진을 겪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업체들은 계획을 폐지하고 준공업지역으로 돌려 자생적인 리모델링과 현대화 등의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대구시는 2007년 8월 북구 산격동 20번지 일원(종합유통단지 북쪽)을 '제1종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결정한 뒤 2010년 63만4천580㎡(약 19만2천300평) 면적의 산격지구에 대한 도시관리계획을 수립했다. 이곳은 과거 1960년대 소규모 제조업자들이 하나 둘 공장을 지으면서 생겨난 자생적인 준공업지역이었다. 산격지구 일대가 노후화되고 신규 용도의 개발 요구가 일어남에 따라 시가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설정했지만 관리계획을 수립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진척된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산격지구 내 입주 기업이 공장 증'개축을 하지 못하면서 재산권 행사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대구 북구 산격 1종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주회(이하 지주회) 박종실 회장은 "하루아침에 지구단위계획구역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며 "오히려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해 문을 닫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산격지구 내에 있는 곰레미콘의 경우 부지를 팔지 못해 '흑자부도'가 났다.
지주회 관계자는 "땅과 설비만 제때 팔고 다른 곳으로 이전하거나 했다면 회사가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지구단위계획 때문에 증축도 안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사려는 사람이 없고, 결국 제값을 못 받아 법정관리에 넘어갔다가 지난해 파산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입주기업들은 지구단위계획이 실현 가능성이 낮은 '엉터리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지주회 권대일 총무는 "대구시가 내놓은 계획은 20만 평에 이르는 부지를 한꺼번에 개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계획이었다"며 "기존 도로를 없애면서 공장 자리에 도로를 만들겠다는 것에서부터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 설치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폐지 안 하면 제조업체 갈 곳 없어
범보테크 김국천 대표는 "40년이 넘는 노후 지역이어서 제조업체는 공장을 새로 짓거나 증축해야 하지만 지구단위계획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며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싶어도 대구 지역의 공장 부지 가격이 너무 비싸고 이곳을 사려는 이들도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지구단위계획이 폐지되지 않으면 이곳의 기업들이 갈 곳이 없어 문을 닫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산격지구는 기존의 준공업지역에서 종합유통단지의 지원 기능과 상주 및 유동인구 수용 등 유통단지 활성화를 위해 제3종 일반주거지역과 일반상업지역, 유통상업지역으로 용도가 변경됐다. 또 2017년까지 서쪽권역은 산업'상업'업무'주거용지로 나누고 중심권역은 상업'문화'숙박용지, 동쪽권역은 산업'유통 및 물류'업무용지로 개발할 수 있도록 묶어뒀다. 이 때문에 현재 이곳에 자리한 제조업체 대부분은 변경된 용도에 맞지 않아 2년 안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한다.
산격지구 내 700여 개에 이르는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갈 곳이 대구 지역에는 마땅치 않다. 접근성과 인력 채용 등의 면에서 산격지구만큼 나은 곳을 찾기 어렵다. 특히 대구 지역의 공장 부지는 소규모 업체가 구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격이 뛰었다.
박 회장은 "지금 이렇게 땅값이 비싼데 어디로 옮겨가라는 소리냐"며 "지금 자리를 팔아야 옮겨갈 텐데 사려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또 "대구시가 지구단위계획을 폐지하면 20만평에 달하는 산업용지를 만드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 것"이라며 "권영진 시장이 신년사에서 산격지구 지구단위계획의 폐지에 대해 언급한 만큼 좋은 결과를 내놓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경석 기자 nks@msnet.co.kr
☞지구단위계획구역
토지이용을 합리화하고 그 기능을 증진시키기 위해 잠재력이 있는 지역을 대상으로 구역을 지정하고, 구역 지정 후 3년 이내에 계획을 수립해 체계적인 개발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도시계획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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