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내려온 지 석 달이 지났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었고 해가 넘어갔으니 나날의 일수와는 또 다른 변화들을 체감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물론 그 속에는 유년시절에서 멈춰버린 고향이라는 시간도 있다. 스무 해가 넘도록 멎어 있던 기억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셈이다. 과거와 현재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일은 태엽장치의 구조만큼이나 신기했다. 새로운 날들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마주한 대구는 익숙한 공간인 동시에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도시였다.
그래서인지 불현듯 나 자신이 이방인 아닌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곳의 익숙함이란 어디까지나 내 기억의 영역인 까닭이다. 정작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다른 말씨를 쓰는 다른 지역의 낯선 사람일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대구의 변화를 몸소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도 이러한 관점들과 궤를 같이한다. 이따금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보이지 않는 시곗바늘이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이유다.
이상한 일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유년의 고향과는 다른 이 도시의 면모들을 접할 때마다 한편으로 쓸쓸한 바람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향수와 현실 간의 괴리라 부를 수도 있으리라. 그럴 때마다 한 가지 생각만을 되짚어볼 뿐이다. 단순한 고향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서 이해해야 할 대구의 맥락이다.
가령 많은 사람이 대구가 보수적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곤 한다. 처음에는 정치적 성향에 대한 하나의 꼬리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으나 그로부터 이곳의 문법과 생활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정서에 대해 언급했다. 이야기는 생각보다 흥미로웠고 또 풍부했다. 경우에 따라 자조 섞인 농담으로 흐를 때도 있었지만 내용의 연동에는 변함이 없었다. 도시에 대한 섬세한 시각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마다의 성향이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대구의 다채로움 역시 그로부터 출발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도시를 바라보는 두 눈은 색채가 아닌 하나의 태도다. 섬세할수록 그 가치를 발현하는 구조다. 이곳에서 기억의 시계가 작동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무관하지 않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맞물린 대구의 섬세한 톱니바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의 시곗바늘은 지금쯤 방향을 거꾸로 돌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조우의 방식에는 어딘가 익숙한 구석이 있다. 각자가 지닌 색채는 다르지만 섬세한 시각을 통해 고향의 정서와 낯선 현실을 맞물리게 하는 형태. 이것은 비단 나와 대구의 관계에서만 돌아가는 태엽은 아니다.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 도시 한가운데서 혹은 커다란 벽면이나 마음 한구석에서 마주하기도 하는 시간들. 눈앞의 이러한 형상을 대개 문화예술이라고도 부르지 않던가.
이승욱 대구문화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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