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 건설을 시작한 미국에는 노후 원전이 많다. 가동 원전 100기 가운데 노후 원전 72기가 계속운전 승인을 받았다.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1979년)로 지미 카터 행정부가 원전 건설 중단을 선언하면서 남은 원전을 최대한 돌리고 있다. 반면 경제성이나 안전성에서 의문이 제기된 원전은 영구정지(32기) 혹은 해체 완료(15기)됐다.
폐로(廢爐)는 진행됐지만 풀어야 할 난제가 많다. 폐로된 원전부지에는 '핵폐기물'이 켜켜이 쌓여 있고, 폐로 이후 신성장 산업을 찾지 못한 도심은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다. 돈도 시간도 충분했다던 미국이 폐로사업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폐로를 준비했다고 하지만
메인(Maine)주 위스카셋(Wiscasset) 지역에 자리한 메인양키원전(90만㎾급)은 1972년 가동을 시작해 경제적인 이유로 1997년 폐로를 시작했다. 폐로는 2005년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잘 진행됐다. 하지만 폐로지역에는 1천434개의 핵폐기물이 64개 관 속에 들어 있고, 이를 언제 어디로 옮길지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다.
이곳 바닷가재 식당 주방장 메튜 씨는 "원전 폐기물이 지역에 있다 보니, 사람들이 안 온다. 폐로 이후 가게 매출이 3분의 2 이상 감소할 정도로 도시가 죽어버렸다"고 했다.
위스카셋 지역 세무담당 수잔 발레이 씨는 "도시 경제사정이 참혹할 정도"라고 했다. 1992년 연간 1인당 400달러 정도이던 세금이 폐로가 진행된 1998년에는 1천600달러, 현재는 2천달러가 훌쩍 넘는다. 시가 돈이 없다 보니 주민들의 집세를 올리는 방식으로 세금을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원전이 돌아갈 때는 세금이 많아 집세도 낮고, 지역에 투자되는 돈이 많아 인구도 넘쳐났다. 도시 인구는 현재 3천700명으로, 20년 전과 비교해도 달라진 게 없다.
최근에는 초등학교 한 곳이 문을 닫았고, 중'고등학교 2군데만 남았다. 고등학생도 400명에서 현재 100명으로 줄었다. 매년 120억원씩 거둬들이던 세금이 현재는 8억원으로 줄었다. 이 8억원은 핵폐기물을 보관하는 대가다. 발레이 씨는 "원전이 들어올 때 막대한 경제적 혜택을 준다는 사탕발림에 주민들이 속았다. 원전이 있을 땐 정말 먹고살기 좋았는데, 어느 순간 경제성을 이유로 대책 없이 폐로한 뒤 떠나버렸다"며 "한국도 우리 같은 상황을 겪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돈의 달콤한 유혹에 원전을 옹호할 것이 아니라 원전과 이해관계가 없는 다양한 전문가 집단을 꾸려 원전정책을 제대로 따져야만 폐로 이후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양키원전에 가보니
메인주 양키원전은 수리비와 유지비 등 경제적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스스로 폐로를 결정했다. 정부가 중심이 돼 운영하는 국내 원전과 달리, 미국은 전기업체 등 개인회사가 운영하다 보니 폐로 결정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폐로에 들어가는 비용은 원전 혜택을 받은 주민들의 전기료에서 일정 부분 적립해 모았다. 폐로에는 모두 5억7천만달러(6천억원)가 소요됐다.
폐로 이후 직원들은 600명에서 100명으로 줄었다. 100명은 핵폐기물 관리 때문에 이곳에 상주하고 있다. 전기는 다른 지역에서 끌어오기 때문에 전기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다. 폐로는 세계 최초로 발족한 '커뮤니티 패널'을 통해 진행 속도를 높였고, 주민 반발을 잠재웠다. 현재도 15명의 패널이 폐로에 대한 공청회와 방사능 위험에 대한 감시를 계속하고 있다.
미디어 담당자 에릭 하우스 씨는 "핵폐기물을 해결하지 않는 한 폐로 이후 산업을 생각할 수 없다. 특히 이곳 관리를 위해 소요되는 회사돈이 매년 1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손실이 많다. 2013년 2월에는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만들지 못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천억원을 받아냈고, 앞으로도 소송을 계속해나갈 방침"이라고 했다.
이처럼 미국 원전 가운데 폐로된 이후 녹지로 방치된 곳은 모두 12곳. 이들이 모두 소송에 나설 경우 정부는 힘에 겨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폐로 이후 도시가 맨살을 드러낼 정도로 가난해졌다는 것이 더욱 큰 짐이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폐로 결정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이듬해인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오노프레(sano-onofre)원전 2'3호기가 폐로를 시작했다. 이유는 후쿠시마처럼 지진대가 있는 태평양 부근이라는 점과 원전 내부에 설치된 증기발생기가 후쿠시마 사고 원전과 동일한 기종이기 때문이다.
실제 미쓰비시 중공업이 애초 발표한 증기발생기 수명과 달리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아 경제적으로 폐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내부 입장이다. 산오노프레원전은 증기발생기 오류로 폐로를 결정한 것에 대한 책임을 미쓰비시에 묻기 위해 4천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원전을 운영하는 전력회사인 서던 캘리포니아 에디슨(SCE) 측은 "미쓰비시가 만든 증기발생기는 2009'2010년 교환된 새것이지만, 배관에 다수의 마모가 발견돼 1년 반 동안이나 운전을 정지했다. 재가동에 대한 주민 반대 운동과 위험성 등이 고려돼 폐로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1호기는 1968년부터 1992년까지 운영을 마치고 이미 폐로됐다. 산오노프레원전 측은 폐로를 위해 44억달러의 예산을 예상하고 있고, 현재 41억달러를 적립해뒀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산오노프레원전 부지는 미 해군이 활용할 예정이다.
글'사진=포항 박승혁 기자 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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