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송군 부동면 내룡리, 주왕산 자락에 위치한 얼음골은 예전부터 한여름에도 시원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 높이 62m 인공폭포를 청송군에서 1999년에 조성했으며 평소에는 시원한 경관을, 겨울에는 빙벽등반을 하는 빙폭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차장에 주차하면 폭포가 바로 보이는 터라 차에서 내려서 바로 장비를 착용하고 계곡으로 내려가면 빙벽등반이 가능해 당일치기로 즐기려는 동호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 얼음골 빙장에서는 2011년 아시아 최초로 5년간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을 유치하게 됐고, 대회 운영 평가가 좋아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을 더 연장해 총 10년간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을 개최하게 된 곳이다. 우리 지방 경북의 청송이 세계 빙벽등반계의 주목을 받는 장소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는 전국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 대회를 3일부터 4일까지 먼저 치른 후 그다음 주 9일부터 12일까지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이 진행된다. 별도의 입장료나 관람에 제한이 없고, 근처에 널찍한 주차장도 조성돼 있으니 빙벽등반에 호기심이 많은 독자는 나들이 삼아 한번 가봐도 좋을 것이다. 대회장 바로 옆 얼어붙은 개울가에는 썰매도 여러 개 비치해 두고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 얼음골에 가는 독자들이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필자를 비롯해 빙벽을 즐기는 많은 동호인은 2000년대 초반에 이곳 청송 빙장을 많이 이용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다른 곳으로 등반을 가는 경우가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빙벽 대회 때문이다. 매년 1월 전국대회와 월드컵, 대회 두 개가 열리는 관계로 대회 전 얼음 관리와 루트 세팅, 구조물 설치 등으로 등반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고, 대회 당일에는 대회 진행 때문에 등반이 힘들다. 이 때문에 실제 일반인들이 빙벽등반을 즐길 수 있는 날 수가 많지 않아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는 동호인도 많다.
요즘은 대부분 인공 빙벽장에서 선등이 금지돼 있다. 빙벽에서 선등이란 엄지손가락 굵기의 큰 나사 모양의 스크루를 빙벽에 박아 올라가는 방식을 말한다. 이런 선등 방식에서 스크루 간격을 멀리하고 등반하다가 추락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해 내려진 조치일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런 제재가 약했고, 뒤로 돌아가서 로프를 먼저 걸어놓는 동호인들이 많지 않아서 인공폭포에서도 대부분 선등 방식으로 등반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 청송 얼음골에서도 그런 추락사고가 가끔 한두 건씩은 일어나곤 했다. 이곳 얼음골 탕건봉에 위치한 인공빙벽은 거의 수직 기울기에 높이가 62m나 되는 관계로 난이도가 다른 곳에 비해서 높은 편에 속한다. 물론 이보다 더 힘든 빙벽들도 있지만 기울기와 높이 면에서는 초보 동호인들이 쉽사리 정상까지 선등을 서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필자가 이곳에서 등반할 때에는 필자 일행 외에 다른 여러 팀도 함께 등반을 했다. 이번에는 필자가 선등을 서서 스크루로 안전을 확보해 나가면서 천천히 등반했다.
빙벽등반은 얼음을 날카로운 도구로 찍고, 깨면서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낙빙을 조심해야 한다. 내가 떼어내거나, 남이 떼어내거나, 자연적으로 떨어지거나 등 원인은 다양하지만 여하튼 사람에게 위협이 될 만한 얼음조각이 떨어지면 주변에 큰 소리로 '낙빙!'이라고 경고를 한다. 소리를 들은 사람에게 행동을 멈추고 떨어지는 얼음 조각에 대비하라는 신호이다.
이런 낙빙은 아주 조그만 동전 크기부터 큰 것은 수박만 한 것까지 크기와 모양이 천차만별이다. 몇십m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낙빙은 손가락만 한 작은 크기라도 간과할 수 없다. 낙빙 소리에 어깨를 움츠리고 헬멧으로 최대한 몸을 가리고 있노라면, 옆으로 바람을 가르는 총알 소리가 '슁~슁~ 휙~ 픽~!' 하고 귓가에 울린다. 일부는 어깨나 헬멧을 때리기도 한다. 미처 피하지 못하거나 벽에 맞고 튀어나오는 놈들은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때리기도 한다.
크기가 작은 놈이라도 무시할 수 없다. 날카롭게 깨어진 얼음조각이기 때문에, 차갑게 굳어 있는 얼굴에 조금만 스쳐도 쉽게 베인 상처가 난다. 이런 작은 얼음들은 그나마 애교스럽게 봐줄 만하다. 위쪽에 등반하는 사람이 떨어뜨리는, 큰 고드름 혹은 머리통만 한 낙빙들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다행히 대부분은 사람을 피해서 떨어지지만, 운이 나쁘게 어깨에라도 맞는 날이면 그날 등반을 포기해야 할 정도의 부상도 각오해야 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심지어는 떨어지는 얼음이 아닌 떨어지는 사람을 맞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단히 위험한 경우로, 빙벽을 오르기 위해 착용하거나 손에 들고 있는 날카로운 장비들이 무기로 돌변할 수도 있다.
그래서 등반 벽에 처음 줄을 걸 때에는 보이지 않는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해가 뜨고 모두 등반 준비를 서둘러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 조금이라도 먼저 로프를 설치하기 위해 애를 쓴다. 늦게 등반을 시작하면 앞서간 사람이 떨어뜨리는 낙빙을 맞아가면서 등반을 해야 할 경우도 있고, 마음에 두었던 등반 루트를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등반 중 가끔은 등반 중인 옆사람과 눈으로 인사를 하기도 한다. 서로 애써 태연해 보이려 하지만 조금씩 비치는 걱정을 때로는 표정에서 지우지 못하기도 한다. 등반이 잘 안 되고 여건이 나쁠 때면 '내가 미쳤지 이 짓을 왜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그날 안전하게 등반이 끝나고, 텐트에서 대원들과 웃으며 맛난 저녁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순간 모두 날아가 버린다.
김재민(대구산악연맹 일반등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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