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 갖고 구조개혁 추진해야, 어느 시점에는 엄청난 저력 발휘
'말의 해'인 지난해에는 유독 대형 사고가 많았다.
연초부터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고로 온 국민을 불안하게 하더니 4월에 터진 세월호 참사는 블랙홀처럼 대한민국을 슬픔과 무기력 속에 가두어 버렸다. 그리고 연말에 터진 '땅콩 회항' 사건은 재벌 3세의 '갑질' 전형처럼 비쳐 반기업 정서 확산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국민의 눈과 귀가 온통 사건'사고에 쏠리다 보니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지난해 초 정부가 야심 차게 발표했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대형 사고 뒤치다꺼리하는 사이 국민의 뇌리에서 잊혔고,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등장으로 잠시 활기를 띠었던 '초이노믹스'도 불꽃이 사그라지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경제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아 경제활동 참가자들의 심리에 크게 좌우된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 경제를 지배했던 키워드는 굿 뉴스보다 나쁜 뉴스에 가까웠다. 저출산'고령화로 늙어가는 한국경제, 위기의 삼성전자와 넛 크래커에 처한 한국경제, 가계부채 올가미와 전월세 상승으로 얼어붙은 내수경기…. 손꼽자면 끝이 없다.
한 해 내내 사건 사고 및 배드 뉴스로 뒤덮였으니 소비와 투자가 얼어붙은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청양의 해인 올해도 경제 상황을 둘러보면 우려스러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을 제외한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우리의 주요 교역상대가 온통 잿빛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로서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금융시장도 선진국 간의 물고 물리는 통화정책으로 난기류가 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고 마냥 넋을 놓은 채 비탄에 잠겨 있을 수만 없다. 발상을 바꾸면 희망과 위안거리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지난해 한국 경제는 성장률 3.4% 내외에 무역과 경상수지 흑자가 500억달러와 900억달러에 육박하고, 수출과 무역 규모도 5천억달러와 1조달러를 넘어섰다.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둔화된 가운데 일본의 엔저 공세 등으로 수출 여건이 크게 악화된 점을 감안하면 괜찮은 성적이다. 성장률 3.4%는 당초 전망치인 4.0%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사고로 소비와 투자 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점을 고려한다면 당초 성장궤도를 크게 이탈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 시장은 지난해 말 '부동산 3법'의 국회 통과로 활력을 되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시장이 내수에 차지하는 비중과 연관산업 파급 효과 등을 감안하면 내수경기도 기지개를 켤 것 같다.
삼성전자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중국의 추격과 일본의 부활로 고전한 가운데서도 지난해 창업법인 수가 200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인 8만 개에 달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창업의 유형이 종전의 음식'숙박'도소매업 일변도에서 벗어나 인터넷'모바일'게임'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대학 내 창업 동아리 및 벤처기업 수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인터넷 거품이 붕괴된 2002년 이후 주춤했던 벤처 창업 열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기대감마저 갖게 한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세계은행이 평가한 한국의 창업환경 순위는 34위에서 17위로 급상승했다. 10여 년 만의 최고 순위다.
이 밖에 '셰일 혁명' 덕분에 큰 폭으로 하락한 국제 유가는 체력이 약화된 한국경제에 기력을 불어넣는 보약이 될 수 있다. 유가 하락으로 인한 긍정 효과를 어떻게 투자와 소비 확대로 연결시킬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세계 경제는 당분간 미국이 독주하는 '팍스 아메리카' 시대가 재현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인 미국이 불과 6년 만에 '글로벌 게임 체인저'로 부활한 것은 구조개혁과 금융, 소프트웨어(SW), 대학 경쟁력의 힘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긴 호흡을 갖고 구조개혁을 추진해 나간다면 어느 시점에는 엄청난 저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믿음을 갖고 단기 성과의 조바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자면 당장 힘들더라도 개혁에 동참하면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실한 비전 제시와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선행돼야 한다.
올해는 희망의 바이러스가 모든 경제활동 참가자들에게 퍼져 나가길 소망한다.
대구가톨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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