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품' 공연 자처 수성아트피아마저 축전 정치인 일일이 소개 '빈축'

내빈 소개'축사로 수십 분씩 '늑장 공연'…열 받는 관객들

지난해 8월 강정고령보 앞 디아크 일원에서 열린 강정대구현대미술제 개막식.
지난해 8월 강정고령보 앞 디아크 일원에서 열린 강정대구현대미술제 개막식.

올해부터 대구시는 내년 정부로부터 '공연' 분야 문화도시 지정을 받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다. 대구는 50석 이상의 등록 공연장만 52곳에다 1천 석 이상의 대형 공연장만 해도 9개를 갖추고 있다. 전국에서 서울을 제외하고는 인구 대비 공연장이 가장 많은 도시로 손꼽히는 명실상부한 공연 문화 도시다.

하지만 이것은 다만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속을 들여다보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시골'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해대는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지방의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관객들은 수십 분간 원치도 않는 이들의 자화자찬을 듣는 인내력을 발휘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개관한 대구문학관 개관식은 넓지 않은 야외 공간에서 열렸다. 하객들은 행사장에 다 들어가지 못해 대구 중앙로 인도를 가득 메운 채 식을 지켜봤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내빈 소개만 30여 명에 달했다. 또 축사도 5명이 연이어 했다. 개관식만 40여 분 소요됐다. 참석자들은 "내빈 인사만 전체 식순의 절반을 차지했다"고 입을 모았다. 원로 문인들은 문학관 안을 돌아보기 위해 그때까지 서서 기다려야 했다.

지난해 8월 말 강정고령보의 상징물인 디아크를 중심으로 열린 강정대구현대미술제 개막식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많은 내빈 소개로 시간이 지체된 데 이어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장 등의 축사까지 이어지면서 지연을 거듭했다. 밤이라고 하지만 무더위가 가시지 않은 탓에 관객들은 힘들어하며 물을 마시거나 부채질을 했다. 식전공연은 몰라도 식후공연은 그만큼 김이 새고 나서 치러져 자리를 지킨 관객들은 별로 없었다.

'명품'공연장을 자처하는 수성아트피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31일 열린 '조수미와 함께하는 제야음악회' 공연에서도 그랬다. 이날 공연은 VIP석 티켓가격이 15만원에 달하는 최고가 공연이었으나 다르지 않았다. 공연 말미에 조수미가 직접 쪽지를 꺼내 내빈들을 일일이 소개하는 순서가 이어져 송년 분위기에 들떠 있던 관객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조수미는 참석 대신 축전을 보낸 지역 국회의원과 구청장, 구의회 의장 등의 이름을 호명하고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관객 김모(53) 씨는 "비싼 티켓 가격을 지불한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명품 공연장은커녕 옛날 구민회관 수준 그대로이지 않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행사 주최 측의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지난해 한 기초자치단체 주최 공연장에서는 지자체장에게만 축사를 하도록 하고 의회 의장에게 발언 기회를 주지 않아 공연을 주최한 담당자들이 의회에 불려가 예산지출 내역을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는 등 봉변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언제부턴가 문화행사에서 정치'경제'문화계 내빈 소개와 축사는 당연한 식순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꼭 공연장 분위기를 해쳐가면서 '의전'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봉산문화회관은 지난해 10월 7일 열린 '봉산문화회관 개관 10주년 축하 행사'에서 봉산의 걸어온 10년의 발자취를 영상으로 정리한 뒤, 말미에 30여 명에 달하는 내빈의 명단을 자막으로 처리해 눈길을 끌었다. 10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의전 시간은 여느 행사장보다 훨씬 짧았다.

한 문화계 인사는 "문화를 활성화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그럴수록 세금에서 나오는 지원금을 가지고 위세를 부리려는 공무원과 정치인들도 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인사는 "접대를 당연시하는 높으신 분들의 문화를 대하는 태도가 먼저 변해야 하고 이를 아무렇지 않게 알아서 모시는 문화 예술인들의 행태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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