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문시장 '시장표 커피' 배달 도전

시장 구석구석 상인들 입맛 꿰고 있어야지~

시장표 커피 바리스타 박희선 씨가 출산용품점 사장 권준숙 씨에게 커피를 배달하고 있다.
시장표 커피 바리스타 박희선 씨가 출산용품점 사장 권준숙 씨에게 커피를 배달하고 있다.
일일 커피 배달 체험에 나선 기자가 서문시장을 찾은 도매상인에게 커피를 전달하고 있다. 도매상인은
일일 커피 배달 체험에 나선 기자가 서문시장을 찾은 도매상인에게 커피를 전달하고 있다. 도매상인은 "올 때마다 거래처 사장님에게 커피 한 잔씩은 꼭 대접받는데 커피를 통해 정이 느껴진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전통시장까지 영역을 넓혔지만 '시장표 커피'는 아직 살아 있다. 진하게 탄 커피 한 잔으로 상인들은 아침잠을 쫓기도 하고, 가게를 찾은 손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한다. 서문시장 2지구 2층에 가면 일명 '다방 커피'부터 원두커피까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시장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커피 종류를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커피 종류가 몇 안될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박희선 씨는 "요즘 커피전문점에만 커피 종류가 많은 게 아니다"며 시장표 커피를 소개했다. 시장 커피 종류는 오는 손님들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손님의 입맛에 따라 농도와 단 정도를 맞추기 때문이다. "이젠 사람 얼굴만 봐도 단맛을 좋아하는지, 쓴맛을 좋아하는지 알아. 레시피라는 게 따로 없지. 어떤 손님은 원두커피에다 믹스커피 원두, 설탕을 더 타서 진하게 마시는 사람도 있어." 설명을 듣던 중 두 명의 손님이 왔다. "이모, 원두커피는 반만 따르고 물 많이 부어 연하게 주세요." 비록 종이컵 커피 한 잔이지만 5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과 입맛을 반영한 커피는 두 손님을 만족시켰다. 손님의 특별한 주문이 없으면 커피, 설탕, 크림 파우더가 1:1:1.5 비율로 들어간 커피가 나온다. 박 씨는 "예전에는 다방커피 맛을 다양하게 개발했는데 지금은 원두커피 맛 개발을 더 열심히 하고 있어. 요즘엔 헤이즐넛 향 커피를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배달 체험에 돌입했다. "4층 원단 가게로 커피 두 잔 달라"는 첫 주문을 받았다. 하지만 박 씨는 "이번 건 내가 해야겠다"며 배달하려는 기자를 말렸다. "4층 아줌마는 물을 가득 부어 마시기 때문에 처음 하는 사람들은 다 흘릴 거야. 에스컬레이터도 두 층씩이나 올라가야 되고." '다른 배달에 비해 커피 배달은 쉬울 것'이라는 두 번째 예상이 또 빗나갔다. 손바닥 크기만 한 쟁반 위에 종이컵을 올려 빽빽한 손님들 사이를 이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박 씨는 빠른 걸음으로 4층에 도착했지만 손에 든 쟁반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집중하면 다 돼. 어떤 때는 들고 뛰기도 하고."

원단 장사를 하는 임정순(72) 씨는 전달받은 두 잔의 커피를 유리병에 담았다. 임 씨는 "2층에서 여기까지 배달하기 힘드니까 두 잔을 시켜 오후까지 마신다"며 "괜히 어려운 이름 붙여서 비싸게 받는 요즘 커피집보다 싸고 또 재료도 듬뿍듬뿍 넣는 이런 커피가 우리 입맛에 딱"이라며 시장표 커피를 치켜세웠다.

시장표 커피 마케팅의 핵심은 상인들과의 두터운 친분 관계에 있다. 커피 전문점에서 흔히 보는 '훈련된 친절함'이 없어도 꾸준히 주문이 들어오는 이유다. 박 씨는 "같은 공간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친근감이 생기고 서로의 사정도 알게 된다"며 "손님 목소리만 듣고도 어느 가게 누군지,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 알아맞힐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도전은 박 씨의 허락을 받았다. 커피 양도 적고 이동 거리도 짧아 난도가 낮은 덕분이다. 같은 층에 있는 출산용품점 사장 권준숙(56) 씨는 가게를 찾은 손님에게 대접할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권 씨는 "젊은 손님들한테는 원두커피,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다방 커피를 대접하면 언제라도 좋아해요. 여름에는 냉커피로 시원해서 좋고, 겨울에는 추운 몸 녹일 수 있어서 좋고. 500원으로 입맛에 딱 맞는 커피를 주는데 누가 싫어하겠어"라고 말했다. 속옷가게 사장 하모(55) 씨도 "우리 가게 99%가 도매상인들인데 거래처 사람들에게 꼭 한 잔씩 대접한다"고 했다.

'스승님'에게 하루 배달 점수를 받았다. 100점 만점에 60점. 기본적인 서비스 정신, 배달할 때의 집중력은 높이 샀지만 치명적인 단점은 길눈이 어둡다는 점. 눈 감고도 가게를 찾아간다는 박 씨에게 비결을 묻자 박 씨는 이렇게 답했다. "40년 일하고 터득한 건데 하루 만에 되려면 그건 욕심이지."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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