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처럼 꾸준히 가라. 그래야 자신도 살리고 세상도 살릴 수 있다"며 평생 참선 공부에 매진한 '절구통수좌'.
한국불교계의 큰 스승이었던 조계종 11'12대 종정 도림 법전 스님이 지난해 12월 22일 대구 팔공산 도림사에서 입적했다. 법랍(출가 이후 나이) 73세, 세수 90세.
법전 스님은 성철 스님을 평생의 스승으로 모신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성철 스님의 딸이며 법전 스님을 스승으로 모신 불필 스님(울산 석남사)은 "성철 스님이 직설적인 것에 비해 법전 스님은 조용했다. 하지만 참선 공부를 시키는 데 있어 맹렬한 점은 다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특히 법전 스님은 대구경북 곳곳에서 수행의 전환점을 맞았다. 성철 스님을 우연히 만나 모시며 깨달음의 나날을 보낸 흔적이 문경 봉암사'묘적암, 대구 파계사'도림사, 김천 수도암 등에 있다.
◆평생의 스승으로 모신 성철 스님
1925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법전 스님은 10대에 출가했다. "절에 보내지 않으면 스무 살을 넘기기 힘들다"는 한 역술가의 말을 들은 부모의 뜻이었다. 당시 조선 제일의 도인으로 소문난 묵담 스님(훗날 태고종 3'4세 종정 역임)이 있는 전남 장성 백양사 청류암에서 고된 행자 시절을 보냈다.
성철 스님을 만난 것은 1948년. 당시 백양사를 떠나 경남 합천 해인사로 가던 길에 잠시 들른 문경 봉암사에서였다. 법전 스님은 자서전 '누구 없는가'에서 "젊은 수좌 한 분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한눈에 머리가 밝아 보이고 아는 게 무궁무진해 보였다. 금강산에서 내려온 그 도인의 법명은 성철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성철 스님이 37세, 법전 스님이 24세. 둘은 열세 살 차이의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맺었다.
그대로 봉암사에 눌러앉은 법전 스님은 성철 스님을 비롯해 청담'자운'향곡 스님 등과도 인연을 맺는다. 이들이 1947~1950년에 일으킨 봉암사 결사(불교 혁신 운동)에 법전 스님도 참여한다. 이 결사는 일제강점기 때 왜색 불교가 나타나 땅에 떨어진 계율과 몰락한 선(禪)을 바로잡기 위해 진행됐다. 법전 스님은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훌륭한 선지식(수행자들의 스승)들을 만나 공부했고,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결정적 시기였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했다.
법전 스님이 1956년 겨울 문경 묘적암에서 벌인 수행 일화도 유명하다. 쌀과 김치 단지 하나만 두고 "쌀이 떨어지기 전에 공부를 마치든가 죽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겠다"며 사생결단의 참선 공부를 했다.
법전 스님은 1951년 경남 통영 안정사 천제굴에서 성철 스님으로부터 '도림'이라는 법호를 얻었다. 이어 1957년 대구 파계사 성전암에서 역시 성철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성철 스님은 여러 제자 중에서도 법전 스님을 특히 아꼈다. "니는 이제 됐다. 어떤 것을 물어도 대답할 수 있겠구나"라며 떡을 지어 제자가 공부를 이룬 소식을 알리는 파참재 대중공양을 해주기도 했다.
◆참선 공부에 매진한 절구통수좌
법전 스님은 성철 스님의 딸인 불필 스님의 스승으로도 인연을 맺었다. 법전 스님이 성철 스님을 모시고 천제굴에 있을 때였다. 성철 스님은 종종 법전 스님을 시켜 당시 경남 진주사범학교에 다니고 있던 딸 수경(불필 스님의 속세 이름)이 잘 지내는지 살펴보고 오라 하기도 했다. 어느 날 수경은 할머니와 함께 천제굴을 찾았다가 출가를 결심했다. 3천 배를 마친 수경은 아버지 성철 스님으로부터 불필이라는 법명을 받아 출가했다.
불필 스님은 성철 스님 사후 아버지에 대해 쓴 '영원에서 영원으로'에서 당시 해인사에 있던 법전 스님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법전 스님은 '절구통수좌'로 잘 알려져 있다. 대중들이 선방에 앉아있는 법전 스님을 보고 '바윗덩어리가 앉아 있는 것 같다'고 지어준 별명이다."
하루는 불필 스님이 "스님은 어째 그렇게 한 번도 졸지 않으십니까"라고 법전 스님에게 물었다. 그러자 "적게 먹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당시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않는 해인사 전통의 용맹정진 때도 유일하게 졸지 않은 사람이 법전 스님이었다.
불필 스님은 "성철 스님이 돌아가신 후 나를 비롯한 여러 수행자들은 법전 스님으로부터 화두를 받았다"고 밝혔다.
◆후학 양성에 힘쓴 한국 불교 큰 스승
법전 스님은 후학을 양성하는 '인재 불사'에 특히 힘썼다. 신라 때인 859년 도선 국사가 창건한 김천 수도암이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자 45세 때인 1969년부터 15년간 복원에 나섰다. 법전 스님은 "많은 스님들이 모여 공부하기 좋은 수행처를 만드는 게 꿈이었기 때문"이라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또 2006년에는 대구 팔공산에 자신의 법호를 딴 도림사를 지었다.
법전 스님은 평소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가 나와야 불교가 발전할 수 있다"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삼세 모두 부처님과 대중들을 연결할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자서전에서 "다음 생에도 바른 스승을 만나 바르게 불법을 닦는 수행자로 살면서 일체중생과 한 식구로 살고 싶다. 돌아보니 새삼 수행을 더 철저히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밝혔다.
◆법전 스님 추모재 대구와 김천에서
법전 스님의 사리를 직접 볼 수 있는 추모재(49재)는 이달과 다음 달에 걸쳐 모두 7번 열린다. 그중 4번은 대구경북에서 진행된다. 앞서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초재 및 2재가 진행된 데 이어 대구 도림사(해인사 분원)에서 3재(1월 12일 오전 10시), 4재(19일), 5재(26일)가 잇따라 열린다. 6재(2월 2일)는 김천 수도암에서 진행된다. 막재는 다시 해인사(2월 9일)에서 열린다.
도림사 053)981-7276, 수도암 054)437-0700, 해인사 055)934-3000.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법전 스님은?
1925년 전남 함평생. 전남 장성 백양사 청류암으로 출가해 17세 때 전남 영광 불갑사에서 설호 스님을 계사로, 설제 스님을 은사로 수계 득도했다.
1948년 성철 스님을 만나 봉암사 결사에 동참했다. 성철 스님으로부터 1951년 경남 통영 안정사 천제굴에서 '도림'이라는 법호를 얻고, 1957년 대구 파계사 성전암에서 인가를 받았다.
1981년 조계종 종회의장, 1982년 조계종 총무원장, 1996년 해인총림 7대 방장, 2000년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2002~2012년 조계종 11'12대 종정을 지냈다.
2006년 대구 팔공산에 도림사를 창건. 2014년 12월 22일 도림사 무심당에서 법랍 73세, 세수 90세로 입적.
2002년 법문집 '백천간두에서 한걸음 더', 2009년 자서전 '누구 없는가'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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