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겨울이다. 아무리 바람이 매서워도 봄을 느낄 수 있는 시장이 있다. 대구역 뒤편에 숨어 있는 꽃 도매시장, '대구꽃백화점'이다. 건물 2층에 들어서면 상쾌한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매주 월'수'금요일 새벽은 싱싱한 꽃이 들어오는 날이다. 수요일이었던 이달 7일 아침 꽃시장을 찾아 꽃과 함께한 상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새벽 꽃시장, 이곳은 이미 봄이다
'싹싹' '사각사각'. 꽃시장에 들어서자 코와 눈보다 귀가 먼저 반응한다. 꽃 다듬는 가위질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다. 여기저기 쌓여 있는 꽃 더미를 비집고 다니며 꽃 상자를 어깨에 멘 사람들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꽃을 받아든 상인들은 아기 다루듯 조심스레 꽃을 손질한다. 이날 대구의 최저기온은 -4.7℃. 하지만 이곳에는 이미 봄꽃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프리지어와 튤립, 목련은 이미 봄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끝났다.
오전 7시, 가장 신선한 꽃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시장 바깥은 아직 어둑어둑한데도 트럭에 실린 꽃은 2층으로 거의 다 옮겨졌다. "새벽 6시부터 꽃이 들어와요." 한 상인이 말했다. 꽃을 실은 트럭은 국내 최대 화훼시장인 서울 양재동 꽃시장에서 왔다. 트럭은 서울로 올라가 대구 상인들이 원하는 꽃을 가져오기도 하고, 대구 동구 불로동, 경북 경산에서 생산한 꽃을 싣고 가 경매에 부쳐 팔기도 한다. 오후에는 김해에서 온 꽃이 대구에 도착한다. 김해 불암동에는 영남 지역 꽃 경매시장인 영남화훼공판장이 있다. 도매시장이라 가격이 시중보다 30% 이상 싸다.
"커피 한 잔 하세요!" '추씨 꽃집'에서 들리는 소리다. '광명 꽃집'김태헌(72) 사장이 "가서 몸도 녹이고 커피 한 잔 하라"며 어색하게 서 있는 기자의 손을 잡아끈다. 따뜻한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얼었던 몸이 사르르 녹았다. 바쁜 일을 쳐낸 상인들이 하나 둘 커피 주변에 모여 앉았다. "아가씨, 꽃 사러 왔어?" 신분을 밝히자 한 상인이 "다음 달에 오면 손님이 바글바글한데. 졸업식, 입학식 행사가 많잖아. 날을 잘못 잡았구먼. 지금은 꽃 비수기"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꽃과 함께한 인생, 꽃시장 상인들
꽃시장 성수기는 졸업식이 모여 있는 2월, 어버이날이 낀 5월, 결혼식이 많은 10월,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이다. 하지만 기자로선 상대적으로 한산한 지금이 꽃시장 사람들과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눌 적기다. 꽃시장 사람들이 언제부터 꽃과 연을 맺었는지 궁금했다. "나? 한 45년 됐나? 우리 할머니가 오십몇 년 하시다가 돌아가셨고." '은석 꽃집' 사장 이영자(70) 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여기서는 10년 경력으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 이 씨는 평생을 꽃향기에 묻혀 산 사람이다. "옛날에 109번 버스 타고 다닐 때 차장 아가씨가 나한테 국화꽃 향기가 난다고 했어요. 몸에 꽃향기가 밴 거지."
2층에 들어선 꽃집은 현재 총 19곳. 꽃백화점이 이 자리에 생긴 것은 1999년 무렵이다. 원래 칠성시장 지하도에서 세를 내고 장사를 하던 상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이곳에 땅과 건물을 사서 이사 왔다. 요즘 말로 하면 '협동조합'인 셈이다. 추씨 꽃집 사장 최재순(69) 씨는 "모두 한 형제 같아요. 새벽 6시 30분부터 눈 뜨고 있는 동안 계속 만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 씨는 여덟 번의 이사 끝에 이곳에 정착했다. "대구 동성로 명성사진관 앞에서도 장사했고. 보자, 한 번, 두 번, 여기가 여덟 번째네!" 손가락을 하나씩 헤아리며 계산하자 주변에 있던 상인들도 옛 추억에 젖었다. "사장님, 옛날에 '방티 장사'도 했잖아요." 커피를 타고 있던 이가 말을 거들었다. 방티가 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자를 보고 "다라이(대야)에 꽃을 담아서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하는 장사"라며 이 씨가 웃으며 설명했다.
한때 이 씨의 최대 고객은 중구 요정(料亭)들이었다. 지금은 신식 거리로 변한 종로와 약전골목 일대가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요정이 즐비했던 곳이었다. "요정 아가씨들한테 꽃 팔고, 계산성당, 로얄호텔 이런 데서도 많이 사갔지." 꽃이 필요한 장소마다 이 씨는 '방티'를 이고 찾아갔다. 동산병원 앞에서도 꽃을 많이 팔았다. IMF 때도 병문안 가는 사람들은 꼭 꽃을 샀다. 은석 꽃집에 마침 단골이 찾아왔다. 이 씨는 "서변동에서 꽃집 하는 VIP 손님"이라고 말했다.
꽃 장사가 제일 잘됐을 때는 1980, 90년대라고 상인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꽃을 대야째 사가는 손님들도 있었는데 요즘은 이런 '큰 손'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한 상인은 "산악회 때문에 꽃꽂이하는 사람들이 준 것 같다. 골프도 대중화되고, 취미가 다양해지니까 꽃꽂이가 밀려난 게 아니겠냐"며 씁쓸해했다.
◆삼대를 이어가는 꽃의 매력
추씨 꽃집, 우씨 꽃집, 여기에는 집안 어른의 성을 딴 꽃집이 많다. 추씨 꽃집 사장 최 씨의 인생에 꽃이 들어온 데는 친정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우리 아버지가 산에서 가져온 백일홍을 접붙여서 많이 팔았어요. 아가씨 때 아버지랑 야생화를 꺾어서 함께 팔러 다니기도 했지요." 원래 동구 불로동 화훼단지에서 국화 농사를 지었던 최 씨는 농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꽃집 운영만 하고 있다. 지금은 최 씨의 딸이 가게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우씨 꽃집' 사장 우제화(60) 씨도 어머니 덕분에 자연스레 꽃 장사에 발을 들였고, 아들인 그가 대를 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6'25전쟁 이후부터 꽃을 팔기 시작했다. "모친 배 속에서부터 꽃 만진 거 치면 61년째, 시장에 나온 지는 30년째네요. 꽃 장사 한 번 하면 다른 거 못해요. 꽃 장사 왜 하냐고요? 꽃 안 좋아하면 이 장사 못 하죠." 우 씨가 껄껄 웃었다. 광명 꽃집도 40년간 꽃을 만진 김태헌 사장의 뒤를 이어 10년 전부터 아들이 가게를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꽃시장을 찾는 손님들도 변한다. 정보로 무장한 20, 30대 젊은 여성들이 요즘 꽃시장의 주요 소매 고객이다. 또 이 꽃 저 꽃을 고르는 젊은 꽃집 사장들을 보면 상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을 짓게 된다. 추씨 꽃집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꽃 사진을 찍어와서 '이런 거 주세요' 하는 젊은 사람도 있고, 우리도 모르는 꽃 이름을 줄줄 꿰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거 보면 진짜 놀랍지"라며 높아진 손님들의 수준을 설명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뒤늦게 꽃이 눈에 들어왔다. 추씨 꽃집 사장은 "오늘 첫 손님"이라며 깎아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초록색 국화와 카네이션 두 단을 단돈 1만원에 팔았다. 꽃시장에 넘치는 정, 손님을 시장으로 이끄는 매력은 여기에 있었다. 글 사진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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