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낮같은 새벽 6시, '땡땡땡'…"경매 시작합니다"

대구 농산물도매시장의 새벽

중도매인들이 쌓여 있는 감귤 상자 사이를 지나다니며 감귤 맛과 상태를 확인한다. 감귤은 2월까지 가장 먼저 경매에 부치는 주품목이다.
중도매인들이 쌓여 있는 감귤 상자 사이를 지나다니며 감귤 맛과 상태를 확인한다. 감귤은 2월까지 가장 먼저 경매에 부치는 주품목이다.

시장(市場)의 얼굴은 다양합니다. 그중 시장이 열리는 새벽, 생동감 넘치는 시장의 모습은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과 닮아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 활기찬 한 해를 보내자고 다짐했을 독자분들에게 새벽 시장 풍경을 전합니다. 두 기자가 각각 매천동 농수산물도매시장과 대구 꽃도매시장인 대구꽃백화점을 이른 새벽에 다녀왔습니다. 실제 상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자 서문시장에서 일일 상인 체험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추위와 새벽잠을 잊은 채 생업에 몰두하는 시장 상인들의 모습에 새해 다짐을 다시 한 번 다졌습니다. 시장의 새벽 풍경처럼 새해에는 더욱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지면을 꾸미겠다는 다짐도 함께 해 봅니다.

◆추위도, 새벽잠도 잊은 농산물시장 풍경

7일 오전 5시 50분 대구시 북구 매천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이곳은 모두가 잠든 사이에 시작된다. 경매를 10여 분 앞둔 시각, 영하 4℃를 밑도는 날씨지만 산지 유통인들은 추위도 잊은 채 각지에서 싣고 온 과일들을 차에서 내린다. 도매시장은 마치 거대한 냉동 창고를 연상케 한다. 감귤, 딸기, 사과, 토마토 등이 담긴 과일 박스가 경매가 시작되길 기다리며 경매장 가운데에 쌓여 있다. 그중 한 상자는 맛보기용으로 개봉돼 있다. 중도매인들은 경매가 시작되기 전 상자 사이를 다니며 과일 맛을 보고 생김새도 매섭게 살핀다.

오전 6시. '땡땡땡' 쇠종 소리와 함께 경매가 시작된다. 경매사는 마치 주문을 외듯 상품을 소개하며 경매를 진행한다. 경매는 2월까지 가장 인기있는 감귤부터 시작된다. 부경매사가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을 쓰고 상자 사이를 옮겨다니며 진행 중인 상품을 가리킨다. 중도매인들은 리모컨처럼 생긴 전자경매응찰기에 가격을 입력하느라 손놀림이 분주하다.

오전 6시 30분. 다음 품목은 방울토마토다. 방울토마토 경매에서는 경매사와 중도매인들 사이에 긴장감이 더 팽팽해졌다. 중도매인들이 높은 가격을 부르지 않자 경매사는 "더 받아, 더 받아" "좋은 거다"는 말을 반복하며 가격을 올릴 것을 권한다. 부경매사는 여기에 맞장구를 치며 그 자리에서 과일 맛을 보고 "달다. 달아!"를 외치며 경매사의 말에 힘을 실었다. 경매에서는 경매사와 부경매사가 한 팀이다. 경매가 진행되기 전 두 사람은 품목과 품질을 미리 확인하고 경매를 진행한다.

경매는 빨랐다. '감귤 10㎏ 24상자, 1만3천500원, 135번' 낙찰 품목과 가격, 낙찰받은 중도매인 번호가 10초도 지나지 않아 전광판에 차례로 떴다. 경매 낙찰에 기뻐할 틈도 없이 경매사는 다음 품목으로 넘어갔다.

오전 7시. 체감 온도가 영하 7.6도까지 내려갔다. 기온은 떨어져도 상인들 몸에서는 열기가 났다. 이날 경매는 오전 7시 40분에 종료됐다. 대구 중앙청과 영업팀 허현 차장은 "평소보다 20분가량 일찍 끝났다"며 "시세가 좋지 않을 때는 경매가 빨리 진행된다. 경매사가 흥정으로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떨어지는 가격을 줍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손가락 사라지고, 리모컨 등장

경매는 10여 년 전부터 손가락으로 표시하던 수지식에서 전자단말기를 활용하는 전자식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경매장에서 중도매인들의 현란한 손놀림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수지식을 대체한 것은 TV 리모컨 크기만 한 전자경매응찰기다. 중도매인들은 진행 중인 품목을 확인하고 개인별로 지급받은 전자경매응찰기에 가격을 입력한다. 이 같은 방식은 경매의 투명성을 높이고 경매 시간을 단축시켰다. 허 차장은 "동점일 때는 100분의 1초까지 잡아주니까 정확한 경매가 가능하다"며 "수지식일 때는 흔히 가졌던 '경매사가 좋아하는 중도매인이 유리하다'는 편견도, 모든 게 전산 기록으로 남으니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자식 경매가 도입되면서 경매장에는 야구장 전광판처럼 생긴 전자경매판도 등장했다. 경매판은 경매장 한쪽 벽과 경매사의 차량에 걸려 있다. 대형 전광판에는 품명, 중량(상자 또는 ㎏), 낙찰가, 낙찰자 등 상품 정보가 올라왔다. 중도매인이 가격을 입력하면 중앙컴퓨터는 입력된 가격을 분석하고, 최고 가격을 제시한 중도매인과 낙찰가를 전광판에 발표한다.

경매장의 변화는 겉모습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일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5월 '농축산물 유통구조 개선대책 보완, 발전 방안'을 발표하면서 농축산물 도매시장에서 30년 넘게 유지된 경매제가 정가제로 바뀌는 방안이 올해 들어 더 강화될 전망이다.

정가수의매매 비중이 늘면 점차 경매는 사라진다. 정가수의매매는 경매장에 의존하지 않고 도매법인이나 도매상인들이 생산자와 사전에 계약해 거래하는 방식이다. 허 차장은 "아직까지 상인들의 정가수의매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지만 가격의 변동 폭을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중도매인과 생산자 교육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엔 바닥 쳤으니 올해엔 올라와야지"

지난해는 과일 업계에 가혹한 해였다. 세월호 사고 여파로 모든 행사가 취소되고, 나들이객마저 줄면서 과일 소비가 줄어든 탓이다. 그래서 IMF 때보다 지난해가 더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앙청과 과일부 중도매인조합총무 정재흥(57) 씨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는데 작년에 손해 본 것만 계산하면 6천~7천만원은 될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중앙청과 과일부 중도매인조합장 이명수(48) 씨도 "날씨가 크게 더웠던 것도 아니라 과일을 찾는 사람이 적었다. 과일 소비가 줄었는데 태풍이나 자연재해도 없어 공급이 많아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새해에는 사정이 지난해보다는 좀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좋은 일이 많이 생겨 사람들이 모여 잔치도 하고, 과일도 많이 소비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작년에는 가슴 아픈 일이 많았지만 올해는 신나는 일이 많아 사람들이 과일도 많이 사먹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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