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형마트 규제 유통법' 그 이후…] (하)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전통시장·동네상권

"전통시장 새단장해봤자…연중무휴·한달 세일 중형마트 못이겨"

중형마트에 둘러싸인 방촌시장. 100억원 대의 현대화 공사를 했지만 손님이 거의 없다.
중형마트에 둘러싸인 방촌시장. 100억원 대의 현대화 공사를 했지만 손님이 거의 없다.

지역 유통시장의 지난 5년을 돌아보면, '약자에겐 가혹한 세상'임을 전통시장 상인들과 동네슈퍼 주인들은 절감하고 있다. 중형마트'식자재마트'브랜드 편의점의 급성장은 생계마저 힘들게 하고 있다. 특색있는 몇몇 전통시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전통시장과 동네슈퍼에는 파리 날리기가 일쑤다.

소규모 동네슈퍼들은 급감하는 매출에도 넋 놓고 있다. 이제 폐업 또는 연명만 하는 신세로 내몰리고 있다. 월 100만∼150만원 정도의 적은 수입에도 버티던 동네슈퍼 중에는 월 70만∼80만원 밖에 못 벌어도 별다른 대안이 없어 근근이 유지하는 곳도 많아졌다.

이들에겐 선택도 없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한켠에 쪼그리고 앉아, 하루 몇 만원 밖에 못 팔더라도 감지덕지 생계를 꾸려가야 한다. 아직도 방 1칸이 달린 작은 매점 슈퍼에서 생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치열한 생존투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1. 중형마트에 둘러싸인 방촌시장

지난해 말 방문한 대구 동구 방촌시장. 최근 127억원을 들여 현대화 사업을 마친 방촌시장은 깔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손님은 시장 내부에 위치한 중형마트에 더 많았다.

인근에서 생선을 팔고 있던 서도선(72) 씨는 "돈 많이 들여 현대화 사업해도 소용없다"며 "이마트나 홈플러스, 롯데마트가 쉬는 날에도 주변 중형마트들이 문을 다 열기 때문에 장사가 안 되는 건 똑같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방촌시장을 중심으로 500m 거리에 있는 100㎡ 이상 규모의 슈퍼마켓은 롯데슈퍼, 이마트 에브리데이(SSM), 대백마트, 빅마트 등 4개. 이중 이마트 에브리데이를 제외한 3개 슈퍼마켓은 연중무휴 문을 열고 있다. 이들 슈퍼마켓은 전통시장뿐만 아니라 인근의 소형 슈퍼마켓 매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8년째 방촌시장 인근에서 66㎡ 남짓 되는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최선희(45) 씨는 "주부들은 10원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동네슈퍼보다는 할인폭이 큰 중형마트를 찾기 마련"이라며 "경기마저 얼어붙으면서 매출이 20% 정도 떨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2. 반야월 종합시장과 수성시장 '울상'

반야월 종합시장은 주변 대형마트와 중형마트에 포위된 형국이다. 시장 상인들은 뚝뚝 떨어지는 매출에 울상이다. 시장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큰 마트가 5개 넘게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25년째 온 가족이 채소를 판매하고 있는 박종근(32) 씨는 이번 김장철 대목 맞이가 예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김장철이 되면 미처 진열대에 올리지도 않아도 배추가 다 팔려 나가던 일은 옛 추억이 되어버렸다. 박 씨는 "중형마트 한 곳이 문을 열 때마다 매출이 20% 이상 떨어진다. 세일이라도 하면 그 파장은 더 크다"고 하소연을 했다.

수성시장 상인들에겐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330㎡ 안팎 규모의 마트들이 위협적인 존재다. 예전에는 시장을 자주 찾던 고객들마저 이제는 대부분 자동차를 이용해 중형마트를 찾아가기 때문이다.

수성시장에서 30년째 야채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오진근(60) 씨는 "아파트 인근에 위치한 중형마트는 한 달 내내 세일을 하며 손님들을 빼앗아간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3. 동네슈퍼 3곳이 문 닫은 비산4동

대구시 서구 비산4동 일대에는 지난 1년여 동안 동네슈퍼 3곳이 문을 닫았다. 그 중 2곳은 한 때 동네 골목상권의 강자였던 신우유통이다. 브랜드없이 동네슈퍼로 잘 살아남았던 한 가게도 줄어드는 매출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았다. 이곳 슈퍼들은 아직도 빈 가게로 덩그러니 남아있다.

비산4동 주민센터 인근에서 신우유통을 운영하다 문을 닫은 한 주인은 "매출은 계속 떨어지고, 동네 단골손님들마저 떠났다. 월세도 제대로 못 낼 형편이라 문을 닫았다"고 털어놨다.

비산4동 일대의 생활소비를 평정한 곳은 비산네거리 코너에 위치한 한 중형마트다. 660㎡가 넓은 부지에 여유로운 주차시설과 은행 ATM기까지 갖추고, 준대형마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 역시 또 다른 경쟁자의 등장으로 시끄럽다. 옛 대영학원 자리였던 큰 부지에 식자재마트가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서문시장 2지구 상가 연합회와 인근 상인들은 식자재마트가 들어서는 것에 결사반대를 부르짖고 있다.

기획취재팀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사진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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